출산 직후 아기 ‘100분 나체 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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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직후 아기 ‘100분 나체 요법’?
  • 승인 2014.04.2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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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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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김 나 희
한방내과 전문의
국제모유수유상담가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출산 직후 아기를 100분 동안 발가벗겨 놓아야 건강해지나요?’

저는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다행히도 자연출산을 위한 여러 조건이 갖춰져서 조산원 출산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행복했던 출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자마자 약간 뜻밖의 상황을 겪었어요. 아기 탯줄을 자르지 않은 채로 제 배 위에 올려놓고 첫 대면을 했습니다. 저는 아기와 피부를 맞대는 첫 만남을 길게 가지고 싶어서 이대로 좀 더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산사 선생님이 “아, 나체 요법 하시려고 그러죠? 알았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체 요법? 나체 요법이 뭐지? 나는 그게 아니라 피부접촉을 하고 싶다는 뜻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자연요법’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를 100분 동안 아무 것도 입히지 않고 나체로 둔다고 합니다. 그 ‘자연요법’의 ‘창시자’가 그렇게 해야 아기가 건강해진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이상하게 보이며, 실제로도 위험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올바른 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필요한 것은 엄마와 아기의 피부접촉입니다. 아기에게 응급조치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목욕이나 소독이나 몸무게 재기 같은 처치는 뒤로 미루고 엄마와 아기를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양수를 가볍게 닦아 주고 엄마 배 위에 올려놓습니다. (태지는 닦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때 아기 손과 팔뚝의 양수는 닦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아요. 엄마의 유두 근처에서 양수와 같은 냄새를 내는 물질이 분비돼서 아기는 후각을 이용해 엄마젖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는 기어가듯 발을 움직이는 신생아 반사가 있어서,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아기가 혼자 힘으로 엄마젖을 찾아서 물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두 시간 안에 젖을 물리면 모유수유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기는 엄마 냄새와 체온과 목소리와 심장소리와 숨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되지요. 다른 방해 요인이 없이 엄마 품에 아기가 곧바로 안기는 최초의 감동은 이후의 애착 형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방안 온도가 따뜻하다면 엄마가 감싸 안는 정도로 충분할 수도 있고, 서늘하다면 엄마와 아기가 맨살을 맞댄 상태로 그 위에 이불을 덮는 것이 좋겠지요.

그냥 바닥에 뉘어놓고 100분 동안이나 벗겨 놓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아기는 한 몸이던 엄마와 떨어져서 매우 불안한 상태인데 썰렁한 허공에 100분 동안 두면 아기의 불안은 증폭됩니다. 포유류는 다른 포유류의 정서 상태를 읽고 그에 맞춰 서로의 정서 상태를 조절하는 ‘변연계 공명’(limbic resonance)을 통해 삶을 꾸려갑니다.

특히나 포유류 아기는 엄마의 냄새, 체온, 호흡 등과 반드시 접촉해야만 생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엄마와 떨어진 상태에서는 카테콜아민과 코티솔이라고 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치솟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박동이 저하되고 불규칙해지고 잠이 얕아지며 성장호르몬 수치는 급감하고 면역 기능이 저하되고 체온과 체중이 떨어집니다(다행히도 엄마와 다시 만나면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되니, 과거의 출산 때 아기와 같이 있지 못했다고 걱정은 하지 마세요).

엄마와 떨어뜨려 놓고 낮은 온도에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아기가 저체온증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저체중아, 미숙아는 생리적인 수분손실이 크기 때문에 더 깊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출산 전후의 시간은 엄마와 아기의 본능을 믿고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가냘프고 사랑스러운 아기가 갓 태어나서 울고 있는데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솟아나지요. 그 마음을 따라가면 됩니다.

100분 나체 요법은 근거가 없고 그 ‘창시자’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내용일 뿐입니다. 주사바늘, 합성약물, 수술용 메스 같은 것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적인 것이 아니랍니다. 아기를 100분 동안 방치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으며 그 자체로 매우 인위적인 개입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아기에게 좋다는 근거는 밝혀진 바 없고 최초의 애착 형성에 해롭습니다. 엄마와 아기의 본능을 믿고 타고난 권리를 존중하는 자연출산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엄마와 아기에게 장·단기적으로 이롭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 때문에 지지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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