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편] 초보 한의사의 임상 경험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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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편] 초보 한의사의 임상 경험기 ①
  • 승인 2014.04.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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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질임상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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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체질임상의학회(전 동무학회) ‘새로운 사상의학을 논하다’ (25)
1. 초보 한의사가 겪는 처방에 관한 어려움과 시행착오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상담환자(흔히 말하는 약환)가 있다는 데스크의 알림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임상초보 한의사에게는 상담환자를 마주하는 순간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요즘은 “네,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는지요?”라는 질문에 “그냥 몸이나 한번 補하려고 보약 좀 지으러 왔습니다”라는 답변은 흔치 않다. 대부분 “어느 어느 병의원에서 치료받았는데 차도가 없어 한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할까 하여 왔습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더 흔한 듯하다.

이때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매듭을 지어야 할지 매뉴얼화된 플로차트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초보 한의사에게는 문진 내내 빙빙 겉돌고 장황한 이야기가 오랜 시간 이어지곤 한다. 처방에 대한 고민으로 진료시간 내내 그리고 퇴근해서도 차트를 들고 씨름하면서 각종 서적을 뒤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름 약을 잘 짓고 실력 있다는 평판을 듣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런 환자의 경우 어떤 처방을 쓸까요?”라고 물으면, 선배들마다 상이한 답변이 돌아온다. 어떤 경우는 처방의 내용이 한열을 오가고, 작용부위가 상하좌우를 오가는 경우도 있다. 환자와 질병, 치료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보니 용약에서도 서로 다른 기준으로 증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생스러운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 결론을 도출하고 나서도 문제이다. 초보 한의사는 우여곡절 끝에 처방을 결정하고, 환자분께서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초진시간 이후 또 한 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순간이 있다. 한약을 복용 중인 환자분께서 복약이 종결되기 전에 별도의 치료목적 외로 한의원에 오시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이다.

“원장님, 이 약 먹으면서부터 이런저런 불편함이 생겼어요.”

이 시점부터 초보 한의사는 각개전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수려한 언변(명현반응부터 해독되는 과정까지)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약을 바꿔드리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처방을 어떻게 구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선배들께 연락을 돌린다. 한의쉼터에 질문을 올려보기도 한다. “이런 처방에 이런 사이드가 났어요”라고 물으면, 대답은 역시나 한열, 상하좌우를 오간다. 아니면 말고 식의 답변도 자주 듣게 된다.

위의 모습은 초보 한의사 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어떤 처방이든 자신 있게 드릴 수 있고, 부적합 반응이 나타날 경우 대체 방안의 방향성이 명확하다면, 아무리 임상경험이 부족한 한의사라 할지라도 처방을 쓰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2. 기존 사상의학이 가진 진입장벽과 임상 적용의 어려움
사상의학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체질판별의 어려움이다. 초기부터 정확히 체질을 알아내겠다는 욕심은 버리더라도, 체질전문을 표방한 선배님들 간에도 체질판별이 달라지는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러면 「壽世保元」을 외우며 시험을 치던 학부시절부터 들던 의문, “체질이 있긴 있나?”란 미궁 속으로 다시 빠져든다.

전문을 표방한 집단에서 이러하니, 일반 한의원에서 학부생 시절 공부한 지식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는 체질상식을 기반으로 툭툭 던지듯 “소양인 같네요”라고 체질을 말하는 상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의계 내부의 모습은 초학자로서 사상의학에 대한 기대와 믿음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또한 ‘수세보원’ 처방이면 거의 모든 질환군을 치료할 수 있다는 선배들의 말은 초학자에게는 다소 허황되게 들린다. 이제마 선생의 천재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류가 부족한 처방만을 가지고 모든 질환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다소 넌센스를 포함하고 있다.

자! 어찌어찌하여 사상의학의 산을 넘어보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장벽에 부딪힌다. 분명 소양인이란 판단(이미 알려져 있는 여러 가지 체질판단법을 기준으로)으로 荊防地黃湯을 처방했다. 그런데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 정도가 부작용이 날까 불안하여 두루뭉술하게 쓰던 처방에 비해 더욱 강력한 불편함을 호소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판단한 체질, 한열, 진단, 처방 중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리송해진다. 동일한 환자를 놓고 선배들도 체질을 다르게 판단하는 상황에서, 초학자가 명확한 기준을 잡고 판단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다른 유형의 문제도 있다. 다행히 체질이 맞았는지는 모르나, 환자분께서 복용 시 큰 불편함을 호소하지는 않으시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 제, 두 제를 연복함에도 불구하고 주소증에 차이가 없을 때이다. 체질은 맞는 듯하니, 다른 계열의 처방으로 옮겨가 본다. “荊防地黃湯이 별로니 獨活地黃湯을 써볼까?” 이 시점이 되면 사상의학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 고방, 후세방, 경험방 등에서 겪어왔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계속>

<체질임상의학회(구 동무학회) 학술팀·
학회 홈페이지 http://dongm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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