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28] 여성을 위해 풀어쓴 언해 의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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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28] 여성을 위해 풀어쓴 언해 의약서
  • 승인 2014.04.1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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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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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동의보감」②
누구라도 한국의학을 대표하는 의학서로 「동의보감」을 손꼽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지난 400여 년간의 역사를 통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대만, 홍콩, 베트남 등 여러 지역에 전파되어 여러모로 아시아의학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기에 정조임금조차도 자신이 직접 지은 글 속에서 조선에서 만든 책 가운데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조선으로 중국판을 되사오게 된 책으로「동의보감」만한 것이 없다고 극찬하였다.
◇「언해동의보감」

그간 여러 종류의 한글번역본이 시중에 유포되었지만 현대어로 된 한글번역은 1960∼70년대에 이루어진 남한의 허민 역본과 북한에서 조헌영이 주도하여 고려의학원에서 발행하여 소개된 번역본을 시발점으로 이후 다양한 국역본이 출판되었다. 이 언해본 「동의보감」은 한글로 써진 번역본 중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장 빠른 것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의보감」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내용 가운데 해석상 다소간 이견이 있는 부분이라든가, 고유음이 달라진 글자, 혹은 판본에서의 결획이나 오류를 확인해 보는 참고자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다 하겠다.

아래에 기술하는 내용의 대강은 2011년 한국한의학연구원과 한국의사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동의보감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된 ‘동의보감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영정 교수의 ‘동의보감 초간본의 현황과 한글본 동의보감의 특징’이라는 제하의 논고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혀둔다.

먼저 이 한글로 된 언해동의보감은 궁 안의 여성들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1920년경에 작성된 「연경당서책목록」에 이 책도 포함되어 있는데, 연경당의 한글자료들은 훗날 일제통치하에서 李王家의 樂善齋로 옮겨지기에 실제 왕실 여성이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목록에도 3책이 남아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현재 전존하는 잔본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연경당은 순조 27년(1827)에 珍藏閣 옛터에 창건되었으며,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경축의식을 맞아서 이를 거행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하여 건축한 것으로, ‘演慶’이라는 이름도 이때 붙여진 것이라 한다. 연경당의 동쪽 마당에는 善香齋라는 서실을 마련하여 서책을 보관하고 왕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용하게 하였는데 한글본「동의보감」은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창덕궁 후원에서 演慶堂과 善香齋 건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현전하는 「동의보감」언해본으로서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기록상으로는 三木榮의 「朝鮮醫書誌」에 1책으로 抄集한 필사본이 있다고 하였으나 전존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고한글 표기 및 조선시대 말엽의 언어로 언해하여 궁체로 기록하였기에 한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서지학, 국어학, 서예사 등 여러 학문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며, 특히 왕실에서 사용한 궁중 언어 연구를 위한 1차 사료로서 의미를 지닌다.

한글본 「동의보감」의 편찬 목적과 관련하여, 왕실에서 편찬하는 한글기록이 주로 內命婦, 즉 왕실 여성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책 역시 누구보다도 왕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을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 왕실 여성들이 전문의서를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기 위해 언해한 것인지 그 연유를 자세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앞으로 좀 더 명확한 기록이나 정황 증거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다방면에 걸친 언해본 동의보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에서 보다 다채로운 연구성과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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