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25> - 「朝鮮藥名解」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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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25> - 「朝鮮藥名解」①
  • 승인 2014.03.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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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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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陶工)과 함께 끌려간 조선 약초

조선 중기「동의보감」에서 이룩한 성과는 우리 의약 발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실용지식들은 이웃나라 일본에 전해져 갖가지 분야에서 지식의 확장에 기여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실증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책에 나타나 있다.

이 책을 작성한 사람은 임진왜란 때 왜구에게 잡혀가 송환되지 못한 채 그곳에서 뿌리를 내려야만 했던 조선인 포로의 후예이다. 그는 그곳에서 譯士, 즉 통역사 노릇을 하면서 삶을 이어갔는데, 대대로 물려받은 韓語 지식을 활용해 「동의보감」탕액편에 실린 조선 향약의 명칭을 일본어로 풀어쓰고 약물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선 이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저자의 서문(‘朝鮮藥名解序’)을 통해 이 책이 나오게 된 경위를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 집안은 원래 韓人 포로의 후예로 대대로 조선말[韓語]을 전해 받았기 때문에 通譯하는 일을 職任으로 맡아왔다. … ”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주변의 무고한 말에 휩쓸려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역사의 직무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일평생 의업에 투신해 숨어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본디 갖춘 재주를 숨길 수가 없었던 듯, 의약 선생을 따라 약재를 탐구하러 다니면서 수년간 藥性과 五味[五藥之性]를 공부해 오던 중이었다. 어느 날 그는 선생과의 문답을 통해 고어로 된 약명의 풀이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고 결국 선생의 권유에 따라 약재의 이름을 일본말로 표기하기 작업에 착수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에 허준이 지은 ‘許氏寶鑑’(「동의보감」을 말함)에 실린 약명을 풀어 옮겨보기로 한다. 하지만 그는 歸化한지 오래 되어 이미 말이 많이 달라져 있었고 또한 일본에서「동의보감」책을 飜刻하여 찍어내면서 실수로 달라진 것이 검색되지 못하여 오류가 있을까 두렵다면서 여러 학자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저어된다고 겸손해 한다.

이렇게 모은 말들이 조금씩 모여 책을 이루었기에 제목을 ‘朝鮮藥名解’라고 붙이고 이로써 선생이 맡긴 당부에 가름하고자 한다고 소회를 밝혀놓았다. 그는 바로 사쓰마(薩摩)에서 살았던 朴方貫이란 사람으로 서문의 말미에 밝혀져 있는 작성 시점이 1797년(寬政九歲丁巳夏四月初二日)이니 곧 조선 정조21년에 해당한다.

그가 오랫동안 애쓴 결과가 이 한권의 책에 집약되어 있는데, 기술방식은 한자로 된 약명 아래 한글로 풀어 쓴 약 이름, 그리고 이에 병기하여 일본어 가나로 적은 발음 표기, 그리고 맨 밑에 약재 考定에 대한 간략한 기술 등 3단계로 나뉘어 기재되어 있다.

본문은 30여장으로 전문에 실려 있는 약종은 600여종에 달한다. 약재 종류에 따라 상세 분류는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그저 약종에 따라 차례대로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다만 수록순서를 살펴보면, 井華水, 寒泉水, 菊花水, 臘雪水, 春雨水 등 水部로부터 土部, 草部, 穀部, 人部, 鳥部, 獸部, 魚部 등 「동의보감」탕액편에 수록된 순서에 맞춰져 있어, 약재명 풀이의 대본이 다름 아닌 「동의보감」의 수록 기준에 철저히 의거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해 볼 수 있다.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했을까? 어차피 한글을 학습하거나 약재를 한글로 표기하는 것도 아닐 터인데 말이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이미 오래 전인 1700년대 초에 「동의보감」이 일본에 건너가 학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약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으며, 특히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여 대단한 호응을 얻을 정도로 조선의 문물에 대한 관심과 관련 지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기에 조선약재에 대한 기초 상식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음 회에 이 책에 기록된 내용에 대해 몇 가지 실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안상우/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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