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만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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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만이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 승인 2014.03.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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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운

정창운

mjmedi@http://


한의사 정창운의 ‘진화와 의학’ <5>
정 창 운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앞서 설명한 자연 선택은 기본적으로 ‘유전자’에 의한, ‘유전자’를 위한, ‘유전자’의 과정이라는 것이 과거의 정설이었다. 진화이론 이전, 이러한 생명체의 변이에 흥미를 가진 이들 중 하나가 ‘용불용설’로 유명한 라마르크이다. 그의 주장은 한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 후성유전학 등의 발달로 인하여 다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꼭 이러한 유전 관련 변이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서 다양한 형질들이 전파되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조차 상당 부분을 문화의 전파, 밈(meme)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문진 시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가족력이라는 것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친족들의 환경이 그 사람의 특질에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반드시 부모로부터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고, 이모, 삼촌, 형제, 자매 등 각 개인을 둘러싼 이들이 이루는 문화적인 관계를 통해서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된다. 이에는 예절이나 교육부터 식습관 등 다양한 생활양식들이 있으며, 가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가시적인 여러 행동들도 결국 여러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최근의 연구들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비만과 같은 질환이 대인관계를 통해 ‘감염’된다는 것까지 보이고 있다.

유전적으로는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동일한 유전형의 쥐들에서도 간혹 자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관찰된다고 한다. 이때 자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어미쥐의 자손들도 똑같이 그러한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가 존재하는데, 이와는 거꾸로 사람에서는 자식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어머니를 둔 사람들은 불안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들이 있다. 이는 여러 가지 행동들도 사람의 ‘질환’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설명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애정의 문제들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뇌의 당코르티코이드 수용체 유전자의 후성적 변화가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되고 있는 것 등이다.

또한 체구가 작은 엄마에게서 나는 아이는 역시 체구가 작을 확률이 높으며, 이는 유전적인 가능성이 충분하더라도, 모체가 온전히 아이에게만 자원(영양분)을 투여하지만은 않는다는 모체-태아 경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거꾸로, 임신 중에 영양공급이 과다한 경우 모체가 당뇨에 이환되기 쉬운 것뿐만 아니라 태아를 과성장시켜 비만과 당뇨확률을 높이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다양한 생명현상이 유전자와 환경, 문화가 어우러진 복잡한 것임을 보여준다.

물론 인간이라는 종을 구성하는 개체들은 너무 많기에, ‘정상’의 범주는 너무나도 넓다. 그러나 분명 이 중에는 특정 환경에 부적절한 표현형이 존재하고, 이들은 때때로 고통을 호소하며, 의학적 도움을 받게 된다. 이러한 질환 중에서 단순한 유전 변이로 인해 유발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대부분의 질환은 복잡한 유전자의 뒤섞임 속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 양상은 그 사람에만 특징적인 바로 그 유전자들의 관계, 그리고 그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져 각각 독특한 모습을 띠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원인을 두고 이를 치료한다는 마법 탄환과 같은 신약 개발은 진화의학의 관점에서도 분명한 한계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최근 맞춤의학이 도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철학을 공유하는 의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경우 잠재적으로 이러한 맞춤식 치료에 대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연구들은 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은 오로지 엄밀한 과학적 방식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는 이에 다가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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