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20> -「麻疹纂要」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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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20> -「麻疹纂要」①
  • 승인 2014.02.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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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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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따라 오고가는 애꿎은 조류독감

설 명절을 앞뒤로 고병원성 AI라는 조류독감이 유행하였다. 철새의 이동경로를 따라 전염된 병증이 순식간에 호남과 충청지방 일대에 번져 귀성객들이 고향방문을 자제해야할 정도로 긴박해졌으며, 양계장을 비롯한 축산가에게 수만 마리의 가축을 한꺼번에 살처분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강요하였다. 중국에서는 더욱 심각해 남북으로 여러 지역에서 수백 명이 감염되고 사망자도 적지 않게 늘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어 이웃한 우리도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마진찬요」

이와는 다른 병증이지만 수 백 년 전에 이 땅의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역병들의 경우에도 이런 당혹감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러한 급성전염성 질환에 대한 전문방역서로 단권으로 된 필사본 의서이다. 원작자는 明淸교체기에 활약했던 馬之騏라는 인물로 邯鄲縣 출신이기에 흔히 馬邯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 없으며, 다만 「疹科纂要」라는 1권의 전염병 책이 남아 전해질 뿐이다.

이 책은 1644년에 저술되어 현재 順治5년(1648)에 나온 목판본이 남아 있으며, 이외에도 청대의 복각본이 더러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언제 조선에 유입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1807년에 경상도관찰사 윤광안이 「痘科彙編」이라는 이름으로 간행한 翟良의 「痘科類編釋義」(1628)에 곁들여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1800년대 이후에는 널리 읽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 책은 劉爾泰의 「麻疹篇」에 주요 참고서로 등장하며, 이후 李獻吉의 「마진비방」이나 정다산의 「마과회통」, 그리고 李元豊의 「麻疹彙成」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마진 치료법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아직까지 이 책을 가장 먼저 수용한 조선 의가는 유이태라고 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왜냐하면 1715년에 돌아간 유이태의 만년 저작 「마진편」의 自作 서문에서 龔雲林(龔廷賢을 말함)과 馬邯山(馬之驥)의 마진 의론을 운운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麻疹通論, 麻疹症治大略, 麻疹潮熱症治, 麻疹出沒傷風, 麻疹汗渴飮水, 麻疹出沒煩燥, 麻疹出沒譫語, 麻疹出沒咳嗽, 麻疹喉痛失音, 麻疹嘔吐腹痛, 麻疹出沒泄瀉, 麻疹出沒痢疾, 麻疹出沒便血, 麻疹飮食瘡毒, … 傷寒發斑隱疹, 孕婦麻疹發斑, 水痘症治 등 17편의 논설이 실려 있다. 권미에는 또 麻疹效方이라는 항목을 두어 升麻葛根湯, 參蘇飮, 三拗湯, 內托散, 千金內托散 등 마진 전문 치료방 80여 수를 수록하였다.
그의 마진 치법은 주로 淸肺火하고 降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마진에 먼저 발산하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淸利, 淸熱, 補血할 것을 주장하였다. 인삼, 백출, 반하 등속의 燥悍한 약물은 일체 쓰지 않았으며, 허약한 사람은 마진이 나은 후에라도 補虛養血하고 調理脾胃할 것을 권장한 점이 다른 책에 비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조선 초사본 「麻疹纂要」는 권수에 ‘麻疹纂要’라 되어 있고 원작자가 ‘邯山 馬之騏’라고 밝혀져 있다. 이로보아 馬之騏의 현전 유일 저작인「疹科纂要」를 토대로 주요 내용을 발췌하고 거기에 자신이 직접 경험한 마진 치료의안과 方解를 곁들여 엮어 놓은 필사본 防疫 전문의서라고 볼 수 있겠다.
겉표지에 己酉季冬이라 적혀 있고 또한 내지에도 ‘麻疹總方, 己酉閏四月’이라고 謄抄시기가 밝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849년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권미의 麻疹效方 다음에 실려 있는 ‘附吾治疹大法’이라고한 항목에 저자만의 마진 치료대법을 밝히고 있어 그 의미가 자못 심중하다. 다음 호에 관련 내용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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