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19> -「南宦博物誌」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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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19> -「南宦博物誌」③
  • 승인 2014.02.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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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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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老草도 구하지 못한 光海의 운명

이 책에는 제주에서 나는 일반적인 약재로 參朮이 있었다고 적혀 있어 제주에서도 인삼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도라지 종류는 전혀 없으며, 沙蔘류는 매우 성글고 가늘어 약재로 쓸 수 없다고 적었다. 또 나라에 바치는 공물을 기록한 誌貢편에 보면 말과 전복, 노루가죽, 사슴고기와 함께 각종 약재 470여근을 貢納한다고 기재되어 있어 좁은 지역이지만 특산약재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항목 곳곳에 물산과 식물을 기재하고선 일일이「본초강목」을 찾아 고증한 것으로 보아 저자 이형상은 목민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평소 의약과 박물에 지식을 쌓고 관심이 많았던 실증적인 학문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말미에는 사리를 따지는 선비이자 학자였던 저자조차도 제주가 진시황이 불로약을 찾았던 고장임을 의식하고 있었던 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숲속의 진귀한 꽃과 풀 가운데 반드시 수명을 더욱 더 오래 늘여 살 수 있는 약이 있을 터인데, 아는 것이 없다. 진한시대에 이른바 불로장생의 명약이라고 한 것은 혹 이것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관아에 있는 여러 官舍와 庫房을 기록한 誌廨편에 보면, 제주성 안에 左衛廊이 48칸인데 이 가운데 藥房이 있고 右衛廊 56칸인데 이 가운데 醫局이 있다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아 각 고을 관아에 약방과 의국을 상설하여 운영하였음을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의원과 의생을 배치하여 진료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 東軒의 동쪽에 橘林堂이 5칸 있는데, 감귤로 가득하다고 적혀 있어 수확 철에 채취한 감귤을 보관하던 저장시설을 설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목에 속한 관리들을 기록한 誌吏편에 보면 胥吏, 小童, 鎭撫, 律生, 漢譯生, 倭譯生과 함께 醫生 62인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여섯 번으로 나누어 매월 초5일마다 役을 선다고 하였으니 대략 5일 간격으로 10인 정도가 근무를 서는 셈이다. 또한 저자는 책의 말미에 1702년 자신과 함께 제주에 와서 벼슬살이 한 사람의 명단을 적어 두었는데, 이 가운데 審藥으로 ‘醫科 尹起殷과 前銜 崔垕’가 기재되어 있어 의과 출신 의관과 전직 관원을 지낸 의원이 심약으로 종사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조정에서 지방관을 파견할 때 고을 수령과 함께 필요 인력으로 의관을 직접 임지로 파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제주는 예나 지금이나 말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 책 안에도 그 풍토가 말을 기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으며, 섬 안에 목장이 모두 63곳이나 된다고 적혀 있다.[誌馬牛] 그런데도 말목장에서 말의 건강을 돌보고 질병을 치료하는 馬醫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 자못 의아하다. 또 다른 기록에 20년 동안의 馬籍을 살펴보니 1년 안에 죽은 것이 1700여 필이 넘고 새로 태어난 것은 혹 660필 이내라 하였으니 말을 보살피는 일이 상당히 허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안에는 마의나 말의 질병 치료에 대해 직접 언급한 부분은 보이지 않아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의학사와 관련하여 흥미 있는 곳으로는 光海君이 圍籬安置되었던 光海君安置所가 있다. 1637년 6월에 제주에 들어와 1641년 7월 초하루 날에 죽어서 8월 18일에야 배에 실려 나갔으니 제주에서 4년여를 머물렀지만 절해고도에 보내져 살아서는 벗어나지 못했던 셈이다. 왕자였던 젊은 시절에는 전쟁을 치르느라 서북과 호서를 떠돌고 폐위되어서는 제주섬에 갇혀 지냈으니 임금으로서는 몹시 기구한 운명이었 다. 삼신산 불로초가 있다는 장수의 섬이었건만 寶位에서 끌려내려 온 폐주에게 불사약이 바쳐질 리 없었을 것이며, 재위 중에 펴내었던 「동의보감」덕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던 비운의 일생이었다.

 

안상우/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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