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신약 고시에서 한약 양약을 나누지 마라
상태바
천연물신약 고시에서 한약 양약을 나누지 마라
  • 승인 2014.01.16 1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경

김윤경

mjmedi@http://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2014년 1월 9일 한의사협회가 2012년에 제기했던 천연물신약 고시무효(2012구합42199)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고시 제2012-22호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별표 1] ‘한약(생약)제제의 제출자료’ 중 제Ⅱ항 제1호 (다)목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한의사의 주장을 많은 부분 인정해 준 것으로 매우 감개무량하다. 더 이상 조선시대의 의생이 아닌 현대사회의 일원인 한의사로 인정받은 느낌이다.

이는 식약처를 피고로 행정법원에서 정식재판을 거쳐 나온 판결로 유권해석보다 더 무게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2007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한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후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한약제제를 처방하고 직접 조제하는 행위는 적법한 행위로 판단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았으나, 이 행정부의 유권해석은 최종 구속력은 없는 것으로 사안마다 다른 유권해석이 나올 수 있으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 이 유권해석을 믿고 한의사가 한약제제를 처방하고 보건소로부터 고발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약제제는 정의는 있지만 일반의약품/전문의약품 중 무엇이 한약제제에 해당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성한의서 처방제제들만이 한약제제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한의사가 천연물신약을 처방하거나 사용하는 경우 자신의 면허 범위 외의 행위에 해당하여 의료법에서 정한 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는 법적 불안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현재 ‘천연물신약’이란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에 따른 의약품으로서 별표 1의 한약(생약)제제의 제출자료 중 Ⅰ. 신약 뿐만 아니라 Ⅱ. 자료제출의약품의 1.부터 4.까지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포함하고 있다. 무효가 된 것은 Ⅱ.항 자료제출의약품 중 1호가 ‘새로운 조성 및 규격의 생약제제’라고 되어 있는데 그중 (다)목이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 고시는 확인대상 의약품인 (다)목 “기원생약은 사용례가 있으나 규격이 새로운 생약(추출물 등)의 단일제 또는 복합제(기존 한약재들을 이용한 레일라정과 같은 종류)”를 1호의 “새로운 조성 및 규격의 생약제제”에 포함하고, 다시 생약제제를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 한정함으로써 한의사의 처방 및 사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나아가 천연물신약의 범위에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생약제제를 포함하면서도 “한방원리에 의한” 한약제제를 제외함으로써 한의사가 사용하던 생약이나 처방을 기초로 자신이 직접 “기원생약은 사용례가 있으나 규격이 새로운 생약(추출물 등)의 단일제 또는 복합제” 의약품을 한약제제로 개발하더라도 이를 천연물신약으로 품목허가 받을 수 없으며, 생약제제로 허가받은 천연물신약은 처방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한의사의 한방의료행위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으로서 결국 한의사의 면허 범위가 제한되고, 나아가 한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의료법에는 의사와 한의사를 나누고 있으나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구분할 수 있는 적극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행정청으로 하여금 면허 범위를 구분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고시의 위임 근거에 해당하는 약사법,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법 등 관계법령에서 이 고시에 이러한 내용을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찾을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생약제제 및 천연물신약 개념을 전제로 한 고시는 결국 한의사의 기본권을 제한하면서도 약사법을 비롯한 상위 법령에 아무런 근거가 없어 법률유보 원칙에 위배되므로 위법사유가 중대하고, 객관적으로도 명백하여 무효이다.

재판부는 약사법등 상위법에서 위임한 바 없이 식약처의 의약품 허가를 위한 본 고시에서 한약과 양약을 나누는 처분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에서는 우리나라의 의료법, 약사법 등 의료관계 법령은 한약과 생약을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거나 양자를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엄밀하게 구별하고 있지는 않다는 평가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하며 이 고시가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한약과 생약 중 생약만을 분리한 다음, 생약제제를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를 말한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데 이는 한약과 생약의 성질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생약제제라는 개념을 정의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역시 합리적인 판결이며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기원생약에 대하여 추출 용매, 추출 용매의 농도, 추출방법, 지표성분(함량포함) 및 성상 등 규격을 달리하여 새로운 의약품을 제조하는 방법이 한방원리 또는 서양의학 중 어느 하나의 고유한 방법론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볼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추출물을 의약품화할 경우 90% 이상 구성성분을 밝히도록 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여 우리나라 천연물신약 수준의 성분규명이라면 이는 성분규명 없이 지표성분으로 사용하는 수준으로 한방원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재판부와 이견이 있는 바이다.

식약처는 이 고시가 천연물신약 범위에 (다)목 의약품 등을 규정한 것은 천연물로부터 추출한 복합제제를 이용하여 개발한 신약을 천연물신약으로 인정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하여 천연물신약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 자체의 정당성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우리와 달리 한의학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외국과의 무차별적이고도 평면적인 단순 비교에 근거하여 상위 법령의 위임도 없는 상황에서 정당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익형량을 생략한 채 식약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제 한약은 동의보감에 적혀 있는 처방을 탕약으로 쓰는 것뿐 아니라 현대적으로 제제화한 한약제제로도 제품화되고, 현대에 걸맞게 천연물신약과 같은 한약 중 신약의 연구개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약사법, 의료법 등 의료관계 법령에서 의약품의 사용에 대하여 한약과 양약을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양방과 한방의 통합 및 보완치료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현재의 추세를 고려하여 같은 의료인인 의사와 한의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영역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의약품 개발시 한의사의 권리침해를 특허권 등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제약회사의 입장에서도 천연물신약 개발에 한의약 처방을 활용하고 한의사가 천연물신약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효과만 좋다면 의사도 천연물신약을 쓴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지 않은가. 그러나 보험에 등재하는 것은 기원생약이나 배합사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이 국민건강에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식약처는 위법한 고시로 한의사의 면허범위를 제한하는 정당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고 즉각 고시를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식약처의 주업무는 의약품 인허가와 안전관리 등이다.

2012년 12월 본 소송이 시작된 이후 2013년에는 제약회사들이 본 고시 항목에 의한 신규 천연물신약 의약품 허가를 받지 못했다. 식약처가 천연물신약 등 제약산업 발전에 힘쓰고 있다면 천연물신약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죄 없는 제약회사들의 신규허가를 볼모로 잡고 항소를 하지 말고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처분성이 없도록 단순히 한약재를 사용한 의약품을 허가해 주는 고시로 개정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 양약과 현대적 한약을 나누는 문제는 식약처의 소관이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업무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