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4주년 기념특집] 한약분쟁과 민족의학신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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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4주년 기념특집] 한약분쟁과 민족의학신문의 역할
  • 승인 2003.08.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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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주도와 정체성 확립 구심체 역할


● 싣는 순서 ●
① 한약분쟁의 배경
② 한약분쟁의 성과와 한계
③ 바람직한 계승을 위하여
④ 민족의학신문의 역할


한약분쟁 당시 한의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료계내 약자였다. 자체 법을 가진 것도 아니고 행정기관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회원 수나 예산 면에서도 양방 의·약 단체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의계는 양방 단체가 갖지 않은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소외의 역사를 겪으면서 다져진 정서적 유대감이었다. 한약분쟁이 터지자 한의사는 한의사라는 직능에 소속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부산시한의사회와 대구시한의사회 회원 200여명이 약국내 한약장 철거조항을 삭제한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관보에 게재되기 전날인 1993년 3월 4일 비상총회를 갖고 택시를 잡아타고 밤새 달려 정부과천청사로 도착한 것은 한의사들이 위기 앞에서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 회원은 근무지인 마산에서 서울로 1주일에 두세번씩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하기를 1여년을 계속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한약분쟁 과정에서 비일비재했다. 내재적인 힘은 한약분쟁 내내 한의계에 큰 힘이 되었다.

□ 한의사의 잠재적 힘 이끌어 내

정서적 유대감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가능성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현실적인 힘으로 이끌어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요인이 있을 터이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언론의 힘이었을 것이다. 한의계 언론사 중 여론을 주도했던 신문은 누가 뭐래도 민족의학신문이었다.

1991년 8월 15일자 제37호와 8월 30일자 제38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약국 불법한방표방’이라는 제하의 약국 표방 실태를 화보로 처리했다. 사진에는 녹용, 인삼은 물론이고 보약, 첩약까지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본지의 취재 이전에도 약사가 한약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현장에서 증거를 채취하는 일을 꺼려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데 비해 본지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불법’ 현장을 촬영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약국의 한약취급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도 끊임없이 수집했다. 서울 양천구 H약국에서 한약을 복용하고 관상동맥혈전증으로 사망한 사건, 서울 남대문 C약국에서 구입한 천왕보심단이라는 환약을 먹고 사망한 사건, 간이 좋지 않은 환자가 부산의 모약국에서 한약재를 혼합한 소위 체질개선제와 혈액개선제를 먹고 사망한 사건, 서울 중랑구 소재 모약국에서 한약엑스제와 양약을 혼합한 약을 먹고 숨진 일, 마포구 모약국에서 보약을 지어먹은 환자가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일, 일본에서 소시호탕을 먹은 만성C형 간염 환자가 10명 사망한 일 등을 집요하게 추적 보도해, 약국에서의 무분별한 한약취급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약사의 한약조제에 제동을 거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불법현장의 고발은 양방 의·약계는 물론 무면허 침구사 등을 가리지 않았다.

□ 정체성 확립에 부단한 노력

한의학의 용이 법과 제도라면 체는 학문이다. 체 없는 용이 없고 용 없는 체가 있을 수 없듯이 민족의학신문은 법과 제도의 개선에도 쉼 없는 노력을 계속했지만 한의학의 발전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약침의 도입, 첩대요법의 도입, 동종요법과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연구 등에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민족의학의 노력은 한의학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한의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수 학술논문의 발굴에 매진한 결과 기초학문의 내실을 다지는 원천이 되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한의학의 정체성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민족의학신문은 한의사를 옥죄는 의약관련법의 분석, 각종 소송사건의 대책, 정책방향의 설정에 심혈을 기울여 일선 한의사의 현실인식을 높였다. 안으로는 한의계에 만연한 무기력과 무능력, 무책임을 3무라고 질타하며 내부적 각성을 도모하고, 한의협의 체질을 개선하기도 했다.

□ 한의계 메신저 역할 톡톡

이 과정에서 본지와 본지소속 운영위원들이 한의협 분회장, 대의원, 특위위원으로 참여하여 한의협 대의원총회의 관행을 개선하는 한편 5천만원의 정책기획위원회 예산을 따내 한약분쟁 과정에서 정책개발의 산실이 되었다.

본지 소속 회원들은 서울시 최환영 부회장이 주도하는 정책백서 제작에도 참여해 한의학 최초의 정책백서를 발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 정책백서는 돌발적인 한약분쟁에 닥쳐서도 한약사제도 도입방안이 연구되는 등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정책의 대강을 짚어줌으로써 이후 정책적 혼란을 줄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문의 기능이 중앙에만 몰려 있었다면 효과는 반감됐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본지의 지방 운영위원들은 지역 한의계의 일선에서 중앙과 지방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유사시 정확한 상황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운영위원들의 능력이 신문이라는 틀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신문을 창간하기 전에 ‘한방의보 전국확대 추진위원회’(약칭 의확추) 활동을 전개하면서 한의학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같이 했으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터득했다.

이들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재학시절 학내민주화에 참여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오랜동안 다져진 투쟁력은 개원해서도 곳곳에 산재되어 협회 임원으로, 때론 지부투쟁위원회에 소속하면서 한의학 수호와 발전의 핵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언론은 한의학을 지키는 한 축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개선하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것, 아울러 큰 사건을 미연에 예방해 주는 일, 그것은 언론의 사명이다.
민족의학신문은 본연의 사명을 위해 오늘도 쉬임없는 정진을 계속하고 있다. <끝>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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