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관련 용어 정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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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관련 용어 정립에 대하여
  • 승인 2013.11.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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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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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식약처는 2013년 9월 26일 천연물의약품발전협의체 제도분과에서 한약관련 용어 개선방안을 논의하였다고 한다. 이 문제는 그간 여러 번 이야기 나왔었으나 문제인식이 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렸으며 이익단체의 반대와 법 개정의 어려움에 부딪혀 무산되었던 것인데 이번엔 약사법 개정 가능성도 이야기되는 것을 보니 뭔가 바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외국은 천연물로 의약품개발을 하는 데에 온힘을 쏟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한약의 발전을 위해서 여기저기에 나뉘어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한약과 한약재, 한약제제의 개념과 정의를 현대화하고 정립하고 넘어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만시지탄이라는 느낌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제 한약이 현대적인 의약품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엄연히 약사법에 있는 한약과 한약제제란 용어를 버리고 굳이 법적 근거도 없는 천연물의약품이란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약사법이나 식약처의 임무가 직능간의 업무범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약사법에 있는 한약의 정의는 ‘동물, 식물 또는 광물에서 채취한 것으로서 주로 원형대로 건조, 절단 또는 정제된 생약’인데, 이는 같은 약사법의 의약품 정의가 완제의약품 개념으로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여 볼 때 식약처에서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60년전인 1950년대 약사법 제정 당시의 좁은 개념으로, 한약을 원료의약품인 한약재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는 한약재를 첩지에 싸서 환자에게 들려주었으니 한약재를 한약이라 정의하였지만 그 후 한약의 사용형태에 있어서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이 정의는 한약재의 정의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러니 한약 및 한약제제의 원료를 통칭할 수 있는 천연물 또는 생약이라는 용어를 별도로 약사법에 추가 정의하여 혼란을 줄 필요가 없다. 만약 별도 정의가 아니라 한약재를 천연물이라는 용어로 바꾼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약이라는 용어는 국내에서 일제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한약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으므로 한약재와 같은 의미이다. 이 한약재를 지칭하는 생약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일본사람들이 pharmacog nosy를 생약학으로 번역했을 뿐이다. Pharmacognosy는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천연물에 대한 학문이지 그 천연물추출물 자체가 의약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서양의학의 의약품이 천연물에서 추출된 단일 성분이 아니라 다 천연물추출물로 한약과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약제제와 생약제제가 한의학적 원리와 서양의학적 입장으로 나뉘어 서로 배타적으로 해석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각 지역에서 나는 천연물 한약재를 이용한 전통제제일 뿐이며 굳이 나누자면 동양의 전통제제와 서양의 전통제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전통제제가 법적근거도 분명치 않은 생약제제란 이름으로 바로 서양의학적 제제로 인정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한약제제는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하여 제조한 의약품’이며 약물사용에 있어서 한의학적 원리는 다성분인 전체추출물을 이용하며 이를 다시 가공포제하거나 칠정과 군신좌사의 원리로 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므로 전체추출물 제제는 한약제제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의약품에 신약이 있는 것처럼 한약에도 신약이 있어야 한다. 한의학적 원리로도 새로운 약재를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가공법, 추출법이나 새로운 처방을 만들 수 있다. 동의보감에 있는 처방만 한약제제가 아니라 활맥모과주와 같은 신규처방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한약제제에서도 이러한 창방과 의약품개발이 인정되어 서양의학과 다른 신약개념이 있어야 한약개발이 활기를 띠고 한약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은 서양의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만일 의사들이 쓰는 한약제제가 필요하다면 보건복지부에서 별도로 한약제제 구분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약이라는 용어를 정의한다면 양약이라는 용어도 정의해야 한다.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의 면허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구별을 두었고 행위를 나누었으며 의원과 치과의원, 한의원을 구별하였다. 그러나 약사법에서는 약사와 한약사의 구별이 있고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업무’와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업무’로 구별은 있으나 약국은 하나이고 의약품이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이며 한약과 한약제제의 정의는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한약사가 만들어진지 17년이 되었으며 2000명이 넘는 한약사가 배출되었지만 여전히 의약품 중 한약사가 다루는 독자적인 업무범위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이다. 만일 한약사의 앞날에 통합약사가 고려되고 있지 않다면 한약과 양약을 약사법에서 별도로 구분하여 한약사의 업무범위를 분명히 해줄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일반의약품 내에 한약과 양약이 혼재되어 있거나 한약과 양약을 배합한 일반의약품 제품이 많은 상황에서 한약에 대한 정의만 하고 양약에 대한 정의는 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약에 대한 제한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 한약은 한방의료에 활용되는 의약품, 양약은 양방의료 또는 치과의료에 활용되는 의약품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한약제제를 의약품으로 하나로 묶어두며 한약제제와 양약제제를 나누지 않는 상태에서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사용을 제한한다면 이것은 역차별이다. 한약과 양약을 나누지 않고 통합약사로 갈 것이라면 한의사와 의사도 나눌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의약학을 전부 통합의학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부디 미래지향적으로 한약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한약 관련 용어를 정립하고 관련 규정을 정리하여 직능간의 다툼이 더 이상 한약발전의 발목을 잡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전문직종을 만들었으면 전문영역을 주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한약을 이용하여 제약산업 발전의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이나 독일 등의 외국을 닭 쫓던 개처럼 쳐다보지 않으려면 빠른 방향설정과 정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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