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 논쟁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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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 논쟁을 바라보며
  • 승인 2013.10.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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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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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
대학원 교수
지난 번 시평에서 장욱승 원장은 사상의학의 문제를 재차 거론하였다(민족의학신문 922호). 필자는 사상의학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기에 논평을 하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럽지만 그의 지적이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남기보다는 생산적인 논의의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한 가지 논제를 제기해 보려 한다.

장욱승 원장은 2011년 6월 시평에서 체질의 실체 규명, 체질 감별 지침 마련, 체질별 약물 및 음식 섭취 지침 마련을 사상의학계가 풀어야 할 세 가지 과제로 지적하였다. 근래 민족의학신문을 통해 연재되고 있는 동무학회 기고는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이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장욱승 원장의 문제 제기는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굳이 정교한 논리를 통해 전달할 필요도 없이 현재의 사상의학이 갖는 문제는 모두들 인지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이 한의원에서는 소음인, 저 한의원에서는 태음인… 이런 체질 판별의 불일치 문제는 수 없이 들어온 지적이지 않은가. 어떤 분은 체질이란 것이 약을 복용해 가면서 확인되는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한의학이 마치 양자물리의 세계를 헤쳐 나가는 학문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환자가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인가? 사실 소위 시탐법(試探法)이라 하는 이러한 접근법이 여전히 필요하고 또한 적절히 계승발전되어야 할 한의학의 요소임을 필자 역시 인정하지만 그것의 대안은 꾸준히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의 문제 제기는 당연한 것이겠으나 장욱승 원장이 제기한 바와 같이 체질의학에 “뭔가 다른 병리”를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여기서 말한 병리가 기존의 중의학이 구축한 병인병기학설 수준의 병리라면, 이미 한국의 사상의학계가 거의 대등한 수준의 이론체계를 갖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한의대 교육에 충분히 확산된 것 같지는 않으나 최근 국내의 사상의학계는 괄목할 만한 학술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근래 출간된 황민우 교수의 「사상의학강설」은 사상의학의 생리, 병리 체계를 중의학계가 수 십년에 걸쳐 완성한 증치의학의 생리, 병리 체계와 비교해도 손색 없을 만한 높은 수준에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장욱승 원장이 이야기한 병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인 듯하다. “정작 실체가 없다면 기기를 판정하는 수준은 무엇인가? 경험상으로만?”과 같은 표현을 보면 관찰가능한 실체에 기반한 병리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 제기가 이 수준에 이르면 이것의 해결은 사상의학계의 몫이라기보다는 한의계 전체의 몫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과거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했듯이 한의학계에서도 “실체를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2012년 5월 17일자 시평). 그러나 현상 자체에서 실체를 분명히 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내부의 실체를 탐구하는 것은 결국 한의학의 이론적 환원, 즉 현대의학 또는 현대 자연과학으로의 해체, 귀속 수순으로 종결될 수 있다. 이것은 굳이 피해야 할 일도 아니고 부정적인 결과라고만 생각할 것도 아니지만, 이에 앞서 이러한 연구 방법론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가 있어야만 한다고 본다. 한의학의 해체 환원이란 결국 인류 지식의 원천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니….

동무학회 기고문은 학술적 체계의 전달이라기보다는 통찰의 전달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의 전달은 오늘날의 한의학에서도 대단히 귀중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통찰이 그저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문으로 발전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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