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해학과 풍자 통해 인생의 깊은 뜻 일깨워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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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해학과 풍자 통해 인생의 깊은 뜻 일깨워주다
  • 승인 2013.10.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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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

김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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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장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학창시절 한번쯤은 읽어봤을 책이다. 우리에게 내용의 구조와 철학적 종교학적 의미와 시사 등을 제기하며 장자의 해학과 깊이 표현에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 엿보인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는 전국시대로 극도의 혼란기였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무자비한 약육강식을 벌인 시기다. 이때는 시대에 부합하는 유가나, 현실적인 권력운용에 관심을 가진 법가 같은 사상과 어지러운 현실을 벗어나 참된 도리를 찾으려는 도가가 있었다. 유가와 법가가 주로 지배 집단에게 호소했다면 도가는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퍼졌다.
장자 著
오강남 옮김
현암사 刊


기원전 4세기 산물인 「장자」는 공자에 관한한 반대버전이고 노자에 관한한 구체 내지는 현실화버전이며 19세기 니체에 관한한 우회버전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내편인데 그 중 소요유(逍遙游)와 제물론(齊物論)편이 가장 중요하다.

‘소요유’편에서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맡기려는 대목이나 송나라 사람 장보가 관을 밑천삼아 월나라 갔으나, 멍하고 얼이 빠진 대목은 기존의 성현을 추락시키며 가치의 전도를 지향한다. 맹자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장자의 라이벌은 맹자가 아니라 공자였다. 공자에 의해 중국 문명의 시작이자 중국 최초의 문화영웅이었던 요임금의 위상은 장자에 와서 한순간 보잘 것 없이 무너진다. 자기 세상에 갇혀 다른 세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가 된다. 가장 인간적이며 윤리적인 통치는 더 무섭게 존재를 사로잡으며 윤리의 그물망으로 존재를 옥죄고 포획하는데도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윤리 앞에 인간은 무장해제 되니 공자의 인의는 무엇보다 더 위험하고 더 강압적인 통치방식이다. 고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물론’은 중국 철학사의 최고봉으로 여길 정도로 장자의 핵심사유다. 실존적 한계성을 초월하여 궁극적으로 변하기 위해 지금의 대립을 초월한 ‘하나’의 세계, 실재의 세계를 꿰뚫어 봐야 한다. 그러려면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사물의 진상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예지와 직관과 통찰을 체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문체의 아름다움이나 시적인 리듬, 만물의 본성, 생명의 본질과 특성은 무엇인가? 고목사회(枯木死灰), 오상아(吾喪我), 굳은 마음(成心), 참주인(眞宰), 만물에는 고정한 실체나 본질이 없다는 ‘비본질적’ 견해, 도추(道樞), 양쪽을 전체적으로 고르게 보는 천균(天均), 양행(兩行), 사물-되기인 물화(物化)와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시각주의인 ‘입장 없는 입장’ 은 일상에서 생각을 깊어지게 한다.

‘응제왕(應帝王)’편의 견오와 광접여의 대화는 누구나 자기 살 방법을 가지고 있는데 인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형벌과 전쟁은 자신과 무수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국가는 대부분 그렇게 성립했고 통치는 대부분 그렇게 이루어졌다. 만물은 저마다 살길을 찾으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이 선의 일지라도. 고로 국가나 제도는 오히려 생명을 해칠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 남해의 임금 숙과 북해의 임금 홀이 혼돈에게 은혜를 보답하려다 혼돈을 죽게 만든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에게 좋음이 저들에게 좋음일 수 없다. 나에겐 삶이지만 저들에겐 죽음일 수 있다. 다른 이의 생을 이해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선의는 타자에게 작동하는 순간, 폭력이 된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이나 살해, 자신이 내린 혜택이 타자에겐 고통이 될 줄을 상상치 못하는 존재들의 무심함과 무명(無明)을 잘 표현했다. 치국평천하의 근본원리가 되는 인의조차 본성에 대한 폭압이요, 생명에 대한 암살자라는 의미다.

장자가 다스림이라는 제도나 인의라는 규범을 버리는 이유는 자신의 본성을 헤치지 않고 온전히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소요유’나 ‘응제왕’에서는 인의규범이나 본성, 생명의 본질이나 성격을 따지고 풀어주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하나의 세계를 제시하여 우리를 흔들고 멈칫하게 하고 혼란스럽고 멍하게 만든다. 한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이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차라리 헤테로토피아(다른 공간)의 세상이다. 우리의 질서를 교란하는 무-질서, 허튼소리요 황당한 소리로 느껴지지만 장자에겐 실재요 진짜 소리인 것이다.

장자가 바라는 세계는 무한의 세계에 노니는 사심이 없는(至人無己), 공적이 없는(神人無功), 명예가 없는(聖人無名) 것이 지인이고 신인의 세계다. 즉 지인은 자기에 연연하지 않고 신인은 공적에 연연하지 않고 성인은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다. 즉, 고착되는 것을 경계하라. 나만 주장한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습관을 나로 착각해 나를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업적에 매이면 일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이름에 매달리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늘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세상의 가치판단에 따라 살아야 한다. 결국 한 번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로 우린 살아오지 않았던가. 이 인간형을 사물적 감각으로 형상화한 것이 대붕(大鵬)이다.

마지막으로 혼돈에 일곱 구멍은 밝음과 어둠을 대표하는 숙(??)과 홀(忽)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앙의 혼돈(混沌)은 아직 분별이나 경계가 생기기 전의 하나인 무극이나 태극을 의미한다. 이것이 원시반본(原始反本)이며 귀일(歸一)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 때 ‘나’는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변혁’의 긴 여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값 1만5000원)

김진돈
시인, 송파구 가락동 운제당한의원장,
송파문인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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