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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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 승인 2013.10.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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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도서 비평 | 시한부 3개월은 거짓말
요즘 들어 갑상선암 환자들이 제 진료실을 찾는 빈도가 꽤 높아졌습니다. 100%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거의 대부분이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 된 경우인데, 아무래도 양의사가 권하는 수술 이외의 방법으로 낫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의 불안·걱정·근심 가득한 얼굴을 마주할 때면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줘야 마땅하건만, 암세포는 워낙 제멋대로 날뛰는 놈인지라 저는 늘 ‘양정즉적자제(養正則積自除; 인체의 바른 기운을 북돋우면 적취는 저절로 없어진다)’와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곤 했습니다.
곤도 마코토 著
박은희 옮김
영림카디널 刊

그러다가 한 신문에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요령’의 저자 곤도 마코토(近藤誠)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습니다. “암은 방치해두는 게 낫다”, “항암제는 효과가 없다”, “건강검진은 백해무익하다”, “암 조기발견은 호객의학이다” 등의 혁명적인 주장을 펼치는 방사선과 전문의가 쓴 책이라고? 무조건 인터넷 서점을 클릭할 수밖에요.

일본에서는 1년 전에 출간되어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는데, 국내에는 아직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해서 가장 최근에 출판된 ‘시한부 3개월은 거짓말’이라는 책을 대신 구입해서 부리나케 읽었습니다.

일독 후의 소감은? 좀 실망스럽더군요. 큰 글씨, 많은 여백 탓에 책장을 아주 천천히 넘겨도 2시간이면 독파할 정도였고, 내용 역시 많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는 까닭은 혹 암이라고 진단받은 사람들에게는 권해도 괜찮을 듯해서입니다. 저는 0.5㎝ 크기의 갑상선 유두암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마치 사망선고를 받은 양 안절부절못했다던 곱상한 여자 환자가 곧장 떠올랐거든요.

저자는 20년 넘게 소위 ‘암 방치법’을 역설했다 합니다. 그 자신 게이오(慶應)대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의학박사임에도, 그는 서양의학계의 가장 일반적인 상식 - 암은 무조건 수술로 잘라낸 뒤 항암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 - 을 뒤집어엎으며 꾸준히 대안을 모색했고, 지난해에는 그 노력을 인정받아 사회 각 분야의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기쿠치칸(菊池寬)상까지 받았다더군요. 그의 실제 의학적 공헌은 지금은 일본 유방암 환자의 60% 이상이 채택할 만큼 보편화된 ‘유방온존치료법’인데, 그는 이 치료법으로 1983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의 여동생을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강을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니 누군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이었지만, 25페이지에서 마주친 “의료는 종교처럼 공포산업이며 불안산업이다”라는 문장 한 구절만큼은 압권이었습니다. 지은이의 표현에 따르면, 오늘날 서양의료계의 현실은 “진짜 암이 아닌 유사암”을 검진이라는 미명하에 발견한 뒤 멀쩡한 사람을 수술이 불가결한 암환자로 만들어놓고서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다는 뜻이거든요. ‘사이비(似而非)’는 비슷해보여도 ‘짜가’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은 확실히 죄악입니다. 오죽하면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께서도 ‘세상의 7대악(Seven Blunders of the World)’ 중 하나로 꼽았겠어요? (값 1만 2000원)

안 세 영 / 경희대학교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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