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604 「內醫院先生案」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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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604 「內醫院先生案」④
  • 승인 2013.10.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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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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調和御藥 어의들의 召命의식

행력항에는 무엇보다도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등과시기와 입원 시기를 조대와 간지로 표기해 놓았다. 이 부문은 前代에 이미 망실되었거나 후대에 상고하지 못한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곤 반드시 기재하는 필수항목이었을 것이다. 또 역임한 관직을 약칭으로 기재하였는데, 지방고을이나 중추원의 관직이 대부분이며, 노령에 수여받은 증직도 다수이다.

◇국역 「내의선생안」


그 다음으로는 享年, 首醫 재임 여부나 기간, 또한 공신이나 군호, 호나 별칭, 혹은 기타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망라되었다. 따라서 전반적인 기재내용은 한 사람에게 1란을 할애해 정형화된 틀 속에서 간략한 인물전으로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담겨진 정보들은 조선 중기 이후 궁중 어의로 활약했던 수많은 의관들의 생애를 조명하고 사적을 추적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몇 가지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임란 이전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 산일된 점이다. 허준이 직접 지은 것으로 밝힌 서문의 내용처럼 왜란 이후 기억에만 의존하여 작성해야 했던 듯 허준을 기점으로 이전 인물은 불과 40인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이 활약한 연대도 연산∼중종조를 벗어나지 않아 선초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둘째, 포폄을 가릴 기준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점이다. 허준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먼 훗날 후손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행적을 밝혀놓겠다는 의지와 달리 실지 기재내용에는 이들의 활약상이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친가, 처가, 외가 등 인척관계를 상세 기술함으로써 내의원 의관들의 자존감을 고양하여 행실을 스스로 제어하는 기능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과거에 제시하였던 가계 배경만을 위주로 구성되어 개인의 능력과 공헌이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다. 또 당자의 관력과 공훈 혹은 증직 등 최소한의 이력과 업적의 결과만을 기록하여 개개인의 능력이나 공적을 상세하게 알 수 없다는 한계이다.

넷째, 의과시를 거친 과거입격자 중에서도 내의원에 근무한 내의들만을 중점으로 등재한 점이다. 다시 말해 국왕을 비롯한 왕실의 의약에 관여하는 극히 일부 의관들만 선별함으로써 일선에서 실지 진료에 투입되었던 의관들이 제외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의료현장을 그려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비해 「태의원선생안」에는 내침의 선생안이나 의약동참선생안이 포함되어 있어 의과를 거치지 않고 집안의 후광을 받지 않고서 오로지 자신이 연마한 독창적인 의료기술만으로 입신 활약했던 인물들이나 유학을 기반으로 의서를 강독하여 의약동참에 들어 의학교육이나 저술에 주력했던 儒醫들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어 대별되는 차이점이라 하겠다. 특히 일정기간만 존속했던 治腫廳이나 임시기구인 侍藥廳, 護産廳 등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의 활약이 적시되지 않은 점들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무 양반중심의 조선시대 사회제도 안에서 400여년에 걸쳐 중인신분의 기술직 관료로서 활동한 내의원 의관들의 인적사항과 가계, 관력 등이 기재된 선생안은 조선후기 한국의학사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고증자료로서 자리매김될 것이다. 특히 허준의학전서에 수록된 본 「내의선생안」은 기존 문헌에서 볼 수 없었던 허준의 자찬 서문을 싣고 있어 허준과 조선 중기 의학연구에 좋은 연구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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