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허영만이 읽어주는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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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이 읽어주는 동의보감
  • 승인 2013.10.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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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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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허허 동의보감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한의학의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은성씨가 소설 「동의보감」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1991년 드라마 ‘동의보감’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1999년 드라마 ‘허준’이 리메이크 되면서 한의학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한의학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치료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하여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와 같은 한의학 관련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지금까지 한의학 관련 만화로 ‘만화 대장금’, ‘만화 태양인 이제마’, ‘만화 동의보감’ 등이 출간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네이버 웹툰에 ‘본초비담’이 연재되고 있다. 이러한 만화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필자는 한의학을 대표할 만화가 없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만화가 허영만이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다니!
허영만 著
시루 刊


‘각시탈’,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꼴’ 등 많은 만화책을 출간한 우리나라 대표 만화가 허영만이 드디어 한의학 관련 만화를 처음으로 그렸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말이다,

올해가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인 만큼 더욱 더 의미가 각별하다. 그의 손을 거쳐서 작품화 되면 TV만화,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부가 콘텐츠가 탄생한다. 드디어 동의보감도 허준의 후손인 양천 허씨, 허영만에 의해 날개를 달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기분이 좋았고 출판되기 전에 모 인터넷 도서 쇼핑몰에서 진행하는 북 펀드에 얼마 되지는 않지만 투자하였다. 그리고 나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려 여러 권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역시 허영만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동의보감을 의사학적으로 조명하여 세계인의 보물이 된 이유를 설명한 뒤 동의보감의 순서에 따라 만화를 구성하였다. 지금 출간된 1권 ‘죽을래 살래’에서는 동의보감 처음에 등장하는 정·기·신 그리고 노인 건강법, 양생법 등을 다루고 있다.

역시 만화로 만들어 놓으니 훨씬 재미있다. 지금까지 「동의보감」을 교과서로 보면서 진료에 임했지만 만화로 보니 색다르다. 환자분들에게 ‘정을 아껴라!’라고 강조하는 것보다 ‘허허 동의보감’의 ‘제3화 정액은 보배중의 보배’를 읽게 하는 것이 더욱 와 닿을 것 같다. 측백나무로 겉을 만들고 속을 32가지 약재로 채워 넣어 장수 베개 만드는 법, 열이 나면 보리의 찬 성질을 이용하여 보리주머니를 머리에 올려놓는 방법은 동의보감을 자주 봤다는 필자도 새롭기만 하다. 한의사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 동의보감을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산삼에 대해 많은 지면 할애를 하고 인삼, 홍삼, 산삼을 구별하는 법을 설명하였지만 홍삼이 아무리 좋아도 체질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다는 한의학의 기본원리인 상대주의 철학이 부족하다. 67화 ‘오래 살게 하는 단방’도 마찬가지다.

66화에서 ‘오래 살게 하는 약’에 경옥고, 연년익수불로단, 연령고본단 등의 처방과 효능을 제시하였는데, 이 처방들이 효과는 좋지만 부작용도 있다는 것을 명시하거나 한의사의 상담을 통해 처방받아 복용하라는 주의사항이 적어 아쉽기만 하다. 앞으로 계속 연재될 것이기 때문에 감수하시는 한의사 선생님들에 의해 바뀔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대학원 모 교수님은 이제 우리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대라고 이야기하였다. 같은 상품이라도 스토리가 있는 상품이 더욱 잘 팔리는 것이 사실이다. 한의약이 지금과 같이 대중에서 멀어진 것은 양방의 무차별적인 폄하도 있지만 우리가 고전에 매몰되어 한의학을 쉽게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이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손으로 만화 ‘동의보감’이 출간되었다. 이제 환자들에게 100번 양생법을 설명하는 것보다 이 책을 한의원 대기실에 놓아두는 것이 낫겠다. 허영만 덕에 한의사들도 좀 쉬어보자! (값 1만3000원)

정유옹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사암은성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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