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교학사의 역사 교과서가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이 때 나온 모 신문의 기사에 “교학사 교과서는 ‘… 철도를 이용하여 먼 거리 여행도 가능해졌다. … 이에 따라 새로운 공간관념이 형성되었다’고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참 우습다. 일본이 한 것은 ‘긍정적으로’ 기술하면 절대 안 되는 것인가? 사실 철도 부설은 대한제국의 사업이기도 했고 경부선과 달리 최초의 철도 경인선은 일본 아닌 미국의 자본으로 건설된 것이다. 우리보다 확실하게 처음부터 제국주의 지배하에 건설된 인도의 철도는 이미 많은 학자들의 분석 대상이 되었는데,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도 그 부정적 측면과 함께 긍정적 측면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 없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일전에, 그간 한의계에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한 모씨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무협지에나 나오는 음양오행과 운기행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중의학의 조선식 아류(한의학)는 일제 덕분에 퇴출이 안 되고 잔존하게 되었죠”라는 설명이 있었다. 한의학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 일제 덕분에! 그의 생각엔 일본 정부가 본토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의생 제도란 특례를 두어 한의를 살려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었나 보다.
모두들 일본을 탓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일본이란 인자는 역사 기술에서 있으나마나 한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저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대중들의 감정에 약간의 위안을 주는 존재일 뿐.
근래에 한의계는 첩약의료보험을 두고 큰 내홍을 겪었다. 이 문제에 관한 지식의 한계로 말을 아끼려 하나, 사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움이 컸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그것이 항상 그들에게 최선의 답인 것은 아니다. 손쉬운 한 마디는 누구나 던질 수 있지만 책임있는 결론은 진지한 검토 속에 나와야 한다.
한의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의학을 말살한 것도 일본이지만 침구사를 만들어 낸 것도 일본이다. 침구사들은 두 가지 사안을 어떻게 평가할까. 우리 편의 구미에만 맞는 손쉬운 답이 아닌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이 전문가 집단에는 있어야 한다. 한의사협회의 집행진들도, 지금 회원들이 좋아하는 것을 넘어 장래에 득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보았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민족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