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원사대가’ 朱丹溪와 羅之悌의 운명적 만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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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사대가’ 朱丹溪와 羅之悌의 운명적 만남 현장
  • 승인 2013.09.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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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민

김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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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형상의학회 원행 동행 취재기 항저우, 샤오싱, 이우 ⑤
주단계 선생의 발자취를 향해서
일행은 버스를 타고 항주에서 약 2시간~2시간 반 정도 거리에 떨어진 이우(義烏)라는 소도시로 향했다. 이곳에 주단계 선생의 묘가 있다는데 일반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라 가이드분이나 버스기사 분도 처음 가신다고 하였다. 이우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윤창열 교수가 주단계(朱丹溪, 본명 朱震亨) 선생에 대해 자세한 해설을 해주었다.

주단계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했고 기억력이 아주 뛰어나 하루에 천자를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30세에 그는 일대에서 이름 높은 유학자인 허겸(許謙)을 선생으로 모시고 남송의 유학자 주희의 학설을 배웠다. 그의 재능과 학식은 낭중지추라 금세 눈에 띄었고, 문학과 역사 및 철학 분야에도 깊은 조예가 있어, 허 선생도 그를 유독 아꼈다. 지병으로 고생하던 허 선생은 어느 날 단계에게 “내가 병에 걸린 지 오래됐는데 나를 치료해줄 좋은 의사가 없구나, 네가 총명하고 탐구를 좋아하니 만약 의학을 배운다면 반드시 훌륭한 의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단계는 30세 되던 해 어머니가 위장병을 앓아서 모친을 치료하기 위해 의학을 잠시 독학을 한 바 있었다. 평소 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단계는 스승의 조언에 벼슬길을 포기하고 의학에 매진하기로 결심한다.

36세에 스승에게 의학공부를 권유받은 주단계는 ‘사람이 태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벼슬보다 낫다’며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스승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45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주단계는 스승을 찾아 전당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지만 마땅한 이를 찾지 못하고 다시 항저우(杭州)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무림현(지금의 항저우 무림광장)에 나지제(羅之悌)란 명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주단계는 나지제를 찾아가게 된다.

나지제는 일찍이 어의를 지낸 바 있어 태무선생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금원사대가의 한 사람인 유완소(劉完素)의 직계 제자로 다른 금원 사대가인 이동원(李東垣), 장종정(張從政)의 이론에도 해박했다. 훗날 주단계가 금원사대가의 마지막 한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 금원사대가 세 명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던 나지제와 주단계의 만남은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윤창열 교수는 “주단계와 나지제의 만남은 북쪽의 의학이 남쪽으로 전해진 역사적인 사건이다”라고 평하였다.

나지제는 원래 제자를 받지 않았기에, 주단계는 3개월 동안 문전박대를 당했다. 어느날 이 광경을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나지제를 찾아와 주단계가 허겸의 수제자로서 학식과 명성이 있는 사람인데 냉대하기 보다는 제자로 받아들임이 어떻겠냐고 조언한다. 이미 주단계의 인물됨과 정성에 탄복하고 있던 나지제는 못이기는 척 주단계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이때 주단계의 나이는 이미 45세였다. 늦깎이도 이런 늦깎이가 없었다. 하지만 주단계는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나지제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나지제의 진료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며, 황제내경과 난경 등 주요 의서를 상세하게 배웠다. 나지제가 돌아갈 때까지 3년 동안 수학한 주단계는 고향으로 돌아와 허겸 선생의 지병을 치료했고 이때부터 명성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주단계의 시대는 비교적 태평하고 안정적인 시절이었다. 온종일 주색(酒色)을 즐기고 고량진미에 빠져 있는 자가 허다했다. 주색은 신체와 정신을 크게 손상시키는 법. 특히 색을 탐하는 자와 거처가 일정하지 않았던 자들은 신체의 근간이 되는 음정(陰精)이 모자라기 마련이었다. 또한 주단계의 시대에 유행했던 의학은 ‘화제국방(和劑局方)’이라는 책이 주가 되었는데 여기 있는 처방들은 조열한 성질의 약들이 많았다. 이는 주단계가 살던 지역의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습열기운이 많은 지역임을 고려해볼 때 기후와 풍토가 안 맞아서 많은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훗날 주단계가 자음파(滋陰派)를 창립한 것도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 및 지역적 특색과 밀접하다 하겠다. 자음은 음을 기르고 보충한다는 뜻이다.

자음파의 핵심은 ‘양은 늘 남기 마련이고, 음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陽常有余,陰常不足)’에 있다. 그래서 양을 보충하는 따뜻하고 뜨거운 약물 대신 음을 보하는 청량한 약물을 즐겨 사용했다. 이와 함께 고량진미에 빠져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음식과 식욕을 절제하고 성생활을 문란하게 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인체를 꾸리는 에너지를 지칭하는 상화(相火)가 함부로 날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화가 날뛰면 음과 정을 손상해 신체가 더욱 허약해지기 때문이다.

혹자는 주단계가 음만 보할 뿐, 양기는 보하지 않은 반쪽자리 학문을 했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단계의 학설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일 뿐, 그도 양기를 보충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과 약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주단계의 책을 보면 보중익기 변방의 처방을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단계는 과거의 이론을 답습하지 않고 많은 임상을 거쳐 주옥같은 처방을 다수 완성했고, 후학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주단계는 대표적인 유의(儒醫)로 그의 저서는 단계심법(丹溪心法), 격치여론(格致餘論), 국방발휘(局方發揮) 등이 있다. 주단계는 의학실력뿐만 아니라 인품도 매우 훌륭하였다고 하는데 묘비에 일대기를 설명한 구절을 보면 ‘주변에 아프거나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들을 찾아가길 서슴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주단계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대표적인 두 명의 직계 제자로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주단계를 스승으로 모신 유순과 주단계의 심복이던 대사공(戴思恭)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스승의 어록을 받아 적었고 그것을 당대 지식인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정교한 언어로 바꾸어 정리하였다고 한다.
<계속>

글=김윤민 한의사
사진제공=대한형상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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