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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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 승인 2013.09.12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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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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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비평 | 철학자와 늑대
강수희 譯
추수밭 刊
광주에 있는 동생 집에 얼마 전 새 식구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지인으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한 것입니다. 새하얀 털, 쫑긋 솟은 두 귀, 높은 음자리표마냥 말아 올린 꼬리 등의 외모가 영락없이 진돗개 백구의 미니어처입니다. 태어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지금은 ‘코코’라는 이름의 ‘강쥐’이지만, 성견으로 자라면 말라뮤트까지는 아닐지라도 허스키 정도는 될 듯싶습니다. 아! 갑자기 향긋한 코코 냄새(?!)가 코를 찌르는 느낌입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제가 개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요.

‘철학자와 늑대(The philosopher and the wolf)’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구입한 책입니다. 소원 중의 하나가 언젠가 마당 있는 집으로 옮기게 되면 몸집이 좀 있는 대형견 키우기였는데, 개로 순치(馴致)되기 이전의 늑대를 키운 철학자가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던 것입니다. 야성의 늑대와 이성의 철학자가 함께 만든 이야기? 듣기만 해도 구미가 당길 수밖에요.

‘철학자와 늑대’란 책은 현재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마크 롤랜즈(Mark Rowlands)가 ‘브레닌(Brenin)’이라 이름 붙인 갈색 털빛의 야생 늑대와 11년의 시간을 동고동락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쓴 대중철학서 혹은 인문에세이입니다. 사실 이런 제목이라면 주제는 대개 뻔합니다. 반이성적 사건들이 분초를 다투며 벌어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인간성의 부정적 측면을 들춰내 강조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짐작대로 저자의 주장은 예상과 같았지만, 저자가 구체적으로 서술한 내용과 깊이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책은 9장으로 나뉩니다. 지은이가 어린 새끼 늑대를 본인 연봉의 1/20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사들였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생생히 그리면서 끝내는 구성이지요. 아마도 저자는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숙명을 우리들 뇌에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킬 의향이 있었으리라 여겨지는데, 어쨌거나 주된 화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하나의 전체라는, 정신은 본질적으로 주변 세계가 체화된 것이라는 ‘체화된 인지론(embodied and embedded cognition)’입니다. 이는 데카르트 이래 서구 과학의 전통이 된 심신이원론에 대한 정면 대응일뿐더러, 정신은 뇌의 신경작용에 불과하다는 현 서구 과학의 주류적 입장과도 과감하게 ‘맞짱’ 뜨겠다는 주장 아닌가요? 다른 하나는 인간은 동물과의 조화로운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는 ‘동물권(animal right)’입니다. 스스로[自] 그러한[然] 자연 속에서 사람이 뭇 생명체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계적·분석적·절대적·존재론적 환원주의가 아니라 유기적·통합적·상대적·관계론적 전일주의가 필요하다는 말 아닌가요? 한의사라면 무조건 감동 먹을 수밖에 없는 책이지 않습니까?

거짓말이 판치는 시절이라 그런지 충직했던 견공들(메리·해피·쫑·방울이·뽀미 등)이 많이 그립습니다. 애증이 뒤섞인 인간관계에서도 떠나고 나면 혹 그리움만 남을까요? (값 1만5000원)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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