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표준안과 한국 한약의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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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표준안과 한국 한약의 강점
  • 승인 2013.09.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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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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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우리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전통의학 기술위원회(TC249)의 한약 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다. ISO 회의의 전통의학 기술위는 2009년부터 시작해서 24개의 회원국이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이 간사국을 맡고 있다.
그동안 한약제품의 품질과 안전성(Quality and safety of manufactured TCM products)을 주로 다루는 2작업반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한약제품에 대해서 유럽에서는 전통의학에 기반한 제품을 생산하는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한방제제의 품질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일본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실감할 수 있었다. 따라서 2작업반에서의 의장은 독일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이 나라들은 자국의 한약산업의 발전을 위해 한약제품의 표준안을 제안하는 데에도 열성을 보였다. 독일은 한약제품의 품질관리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표준안 작성을 제안하였으며 일본은 회사에서 한약제품 생산시 고려해야 할 요구사항의 표준안 작성을 제안하여 다른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었다.

또한 중국은 전체 기술위원회의 간사국일 뿐만 아니라 한약재 생산강국으로서 한약재의 품질과 안전성(Quality and safety of raw materials)을 다루는 1작업반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 국내 표준안 성과를 국제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다양한 표준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한약분야에서 자신 있게 가지고 나가서 제안할 수 있는 표준안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한약제품 분야가 강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한약재 생산량도 계속 줄고 있으며 국가의 지원도 미약한 상태로 중국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우선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삼의 종주국으로 유명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으나 TC249 활동초기에 이미 중국이 1작업반에서 인삼종자의 표준안을 들고 나와서 선수를 빼앗긴 바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가 1작업반에서 한약재의 중금속 시험법 등 표준안을 먼저 제안하였으나 의장이 중국인인 관계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 중국에서도 중금속 시험법 표준안을 제출하여 결국 최종 투표에는 억울하게도 중국 측 표준안이 채택된 바 있었다. 이처럼 표준안을 선점하고 리더를 맡는 것에는 치열한 국가 간의 힘겨루기가 있었다.

인삼의 결과가 좋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홍삼을 떠올리게 되었다. 홍삼은 인삼보다도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으로 홍삼표준안마저 중국에 넘겨준다면 우리나라에는 더욱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데 대표단이 인식을 공유하였다. 홍삼의 표준안도 제품의 표준안에 해당하므로 2작업반의 업무범위에 속하였지만 우리나라 인삼공사가 홍삼표준안을 제안하자 중국이 한약재를 다루는 1작업반의 업무에 한약재의 포제도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홍삼표준안을 중국이 의장을 맡고 있는 1작업반에서 다루게 하려고 치열한 작업을 하였다.

초기에 한약부분 작업반을 한약재와 한약제품 2개로 나눈 헤이그 회의에서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포제를 다루는 별도 작업반을 만들어 한국이 하겠다고 제안하려다가,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만둔 것이 매우 후회가 되었다. 장기간 포제를 어느 작업반에서 다룰 것인가를 두고 공방을 하다가 정리된 것은 전통적인 단순포제는 1작업반에서, 제품을 위한 산업화된 포제는 2작업반에서 다룬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이어진 중국의 방해공작을 뚫고 홍삼은 결국 2작업반에서 다루게 되었고 1작업반에 제출한 표준안이 모두 실패한 것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받아 표준안 작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한가지 우리나라의 강점으로 생각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개발하여 해외에 보급되고 수출하게 된 한약 전탕기였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중국이 초기에 표준안을 작성하겠다고 제출하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중국은 자국 내의 우수한 자원이나 특징적인 분야가 많은데 꼭 우리나라의 강점을 자신들이 표준안으로 개발하겠다고 한단 말인가? 그러나 중국이 그대로 하게 둘 수는 없었으므로 중국의 표준안에 대응하여 국내 전탕기 원개발업체인 경서기계를 참여시키면서, 또한 2012년에 ISO/TC249총회를 대전에서 주최하면서, 2작업반에 참여하고 있는 호주와 남아공 대표들에게 함소아 원외탕전원과 경서기계 견학을 주선하게 되었다. 매우 인상 깊게 보고 돌아가서 경서기계에 전탕기를 주문한 외국대표를 보면서 전탕기 자체뿐 아니라 이와 같은 원외탕전원도 한국에만 있는 특징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aristolochic acid사건 이후로 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증가되어 유럽에서 Directive 2004 규정이 발효되어 더 이상 GMP 시설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들은 모두 퇴출된 상황이나, 시술자들이 공통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유럽에서 개별 클리닉에서 환자에게 처방조제하는 한약은 아직도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약재의 안전성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환자들의 한약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상태이므로 안심하고 한약을 복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약 조제전탕 안전관리지침(Guidelines for Manufacturing Safe and Regular Herb Preparations in Individual Clinics)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를 제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한약재도 아니고 한약제품도 아니므로 어느 작업반에 배정될지가 걱정되었으므로 일부러 제목에 manufacturing이라는 단어를 넣어 2작업반에 배정되도록 하였다. 2013년 올해 봄 남아공에서 열린 총회에서 이 표준안을 2작업반의 신규 아이템으로 발표하였다.

예상대로 선진국에서는 이 지침이 한약제품에 관한 것이냐는 질문을 하면서 업무범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였지만, 우리나라처럼 개별 시술자가 한약을 처방하는 나라에서는 이 관리지침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남아공의 한 참석자는 모든 아프리카 대륙이 한마음으로 지지해 줄 테니 표준안을 꼭 작성하라는 말도 해 주었다. 그 결과 제안이 기각되지 않고 오히려 이 표준안을 다루기 위한 별도의 작업반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나오면서 한국이 주도하는 한시적인 대책반(Task Force)이 탄생하였다. 9월이면 각 나라에서 전문가를 추천하여 대책반이 구성되고 내년 총회까지 일을 하여 작업반으로 전환되게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지만, 한약분야에서 성공한 제안은 모두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특화된 것이었다. 우리가 잘하는 것, 자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약뿐 아니라 침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한의약치료에서도 무엇이 잘 치료되는지, 양방 대비 강점이 있는지 알아야하지 않을까.

이 관리지침 표준안이 나오게 된다면, 국내의 한약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며 전탕기나 원외탕전원 시스템의 수출도 더욱 원활해져 해외에 한국 한의약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약제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한발 늦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탕약시스템에 대해서는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맞춤한약과 사상의학에 대해서도 선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으로 제출할 표준안은 무엇이 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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