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596) 「梅亭寶鑑」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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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596) 「梅亭寶鑑」①
  • 승인 2013.08.0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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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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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門의 壽民上策

지난 해 전라남도 지역의 명의 발굴사업 과제를 진행하느라 해당 지역의 구석진 여러 곳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도 마주했으니 전남문화재위원인 김희태 선생이 그런 분이다. 평소 역사문화 조명하는 일에 마당발로 뛰어다니시는 분이지만 이동하는 시간에 잠깐씩 짬을 내서 옥구슬처럼 빛나는 전통지식 정보들을 캐어내 요처에 뿌리고 다니신다. 그 가운데 하나로 韓昉烈이 쓴 두창치료 경험방 「梅亭寶鑑」이 있다. 이하 저술과 관련한 주요 정보는 그분의 기고문에 힘입은 바 크다.

◇「梅亭寶鑑」


이 책의 서문에는 남원 유학 西河 盧翼遠이 지은 것으로 책의 집필 경위와 취지가 잘 밝혀져 있다. 비록 필사본이긴 하지만 儒士가 지은 서문과 痘方總目, 40여 항목에 달하는 두창치료방론과 경험방, 그리고 저자 본인의 발문과 함께 이어지는 홍진방 등이 차례대로 엮어져 있어 지방에서 활약했던 의원이 지은 경험방서치곤 전체적으로 책의 짜임새가 탄탄한 편이다.

노익원이 쓴 서문에 따르면 친구인 ‘韓友汝寬’(汝寬은 한방열의 字)이 두진(痘疹)을 다스리는 처방과 경험방을 적은 책자를 보여 주며 “시험 삼아 한번 훑어보고 머리글 한 마디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앞뒤를 살펴보니 두창과 홍진을 치료하는 방서인데 첫머리에는 種痘新法이 올라 있다. 또 전편의 말미에 부록으로 경험방이 붙어 있으니 이 책에는 3가지 주제의 의방서가 한 책에 모두 합해져 있는 셈이다. 서문의 작자는 이것을 한씨의 매정보감만이 가진 특색이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서문의 말미에는 이러한 피상적인 특징 말고 “이 책이 널리 유포되어 오래토록 전해지길 바라니 仁義를 지닌 儒士가 온 세상을 위하여 夭厄을 구하려는(爲世濟夭) 한권의 丹經이 아니랴!”라고 하면서 한방열이 유의로서 의방서를 집필한 공로를 높게 평가하였다. 노익원의 지은 글 다음에는 ‘海南尹殷宗錄’, 즉 ‘해남인 윤은종이 기록하다’라는 내용이 서문의 끝에 ‘西河 盧翼遠書’와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글을 쓴 이와 잘 아는 처지인 듯, 등사자가 동열로 같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이 책만이 지닌 상당히 특징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인 한방열과 윤은종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인적 정보는 아직 파악되고 있지 않다. 다만 노익원에 대해서는 1798년 광주목에서 실시된 과거 시험에 참여한 인물 69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당시 과거 시험은 詩·賦·義·箋·策 다섯 분야 가운데 두 분야를 선택해 응시토록 하였는데, 노익원은 유학의 직역으로 참여해 義(草三中)와 策(草三下)에 응시한다. 노익원은 또 1798년(정조 22) 11월에 내려진 求言 傳旨에 따라 農書를 올린 40인 가운데 한사람으로「정조실록」에 등장한다. 「일성록」에는 이듬해 5월에 그가 올린 농서를 내각의 농서에 編入토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농서를 지었다는 것은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전통시대에 국가경영의 기본 틀이 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고 의방서는 백성을 병고에서 구제하려는 인간 경영의 한 단면으로 파악할 수 있기에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방법대로 선비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한 것으로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발문에도 “내가 젊어서부터 병을 다스리고 생명을 구한 경우가 많았는데 古方에 따라 시험해 보니 효험을 보기도 하고 혹은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경험한 것이 허다하여 前人經驗方의 아래에다 모두 모아 놓았다”고 밝혔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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