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첩약과 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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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첩약과 제제
  • 승인 2013.07.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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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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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지난 14일 개최된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는 지난해 11월 11일 임총에서 첩약의보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한 것과는 달리 첩약의보 시범사업 협의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TF를 구성하고 위원장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17일 한의사협회장은 임총을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불법적인 과정이라 하며 무효를 선언하여 다시 한의계는 혼란과 분열의 소용돌이에 빠져 표류하고 있다.

부디 2번째 TF의 위원장으로 선출된 임장신 대의원이 미리 정답을 정해놓고 협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계 모든 역량을 모두 모아 이성적으로 최선의 협상안과 전략을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

이 상황에서 아쉬운 것은 그동안 한의계 내부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 시켰다면 첩약의보와 같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첨예한 문제가 갑자기 주어졌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혼란상보다는 보다 잘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내지 못하였는가? 지금이라도 우리가 가진 것과 상황에 대해서 냉정히 인식하고 판단하여 오픈된 정책결정 구조에서 치열하나 차분하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 한의사들이 잘 알고 있을 첩약과 제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보려고 한다.

최근 치과에서 노인들의 틀니가 보험에 적용되었다. 임플란트는 최근의 진보된 기술이고 틀니는 오래된 구태의연한 기술이니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한의약 역사에서 첩약은 최소 2000년은 넘은 오래된 것이고 제제는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것이다. 그러면 첩약보다 제제가 더 진보된 것인가? 제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는데 더 적합한, 더 효과 좋은 진보된 기술을 묻는다면? 첩약이다. 제제에 있어서 적용된 진보된 기술은 환자 치료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형의 편리성이나 효능입증, 안전성 확보, 품질관리 측면의 것이다. 한의사가 환자를 보는데 있어 더 강력한 효과를 보이는 것을 묻는다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첩약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첩약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환자 개인에 대한 맞춤약이다. 한약은 환자의 전신적인 증상에 맞춰 약재를 군신좌사로 배합하여 처방한다. 첩약은 multi-compound, multi-effect라고 한다. 다양한 성분들이 환자의 다양한 증상을 치료해 줄 수 있다. 또한 백증일방, 일증백방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질환이어도 적응증이 같으면 같은 처방을 사용할 수 있으며 같은 질환이어도 환자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처방을 사용한다. 운용의 묘가 첩약의 특징이다. 두 번째 질환의 양태가 변하거나 치료의 원칙이나 방향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처방을 만들어 새로운 치료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서양의 신약과는 달리 이미 사용해 왔던 약재들의 배합을 바꾼 것이므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지 않아도 새로운 처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2000년이 넘는 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가 있어 숙련된 한의사들은 앞에 있는 환자에게 적합한 처방을 선택하거나 창방하여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한약첩약의 치료는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점으로 첩약에서는 진단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실제 방제행위는 한의사의 치료행위 중 가장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서양의학에서 Human Genome Project 이후 이야기하고 있는 미래의 맞춤의약, 네트워크 의학의 시대에 적합한 것도 환자 개개인의 맞춤약이며 다양한 효과를 자랑하고 있는 첩약이다. 더 오래되었지만, 더 진보된, 수준 높은 한약치료가 첩약이다. 따라서 첩약은 보약개념에서 유래된 것처럼 보이는 65세 이상 1년 1회와 연결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4대 중증질환과 연결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물론 첩약의 단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표준화가 불가능하다. 한약재는 자연이라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편차가 있게 마련이다. 약효의 균질성을 위해서는 엄격한 약재 선별과 관리가 필요하다.

두 번째 복용이 불편하다. 환자가 복용하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처방전을 쓰고 조제하고 전탕하고 포장하고 보관하다가 다시 데워서 복용하여야 한다. 맛도 좋지 않다.

세 번째 안전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한약재가 만들어지는 밭에서부터, 자연에서부터 관리하여야 한다. 사용되는 한약재들마다 중금속, 농약 등 검사를 하여야 하며 그래도 전체 한약재가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한의원에서 검사를 거친 규격품 한약재만을 사용하는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던가.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 데는 비용이 발생한다. 비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첩약은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첩약이 보험에 들어가면? 단점이 부각될 뿐 지금까지 말한 첩약의 장점이 모두 사라진다. 국가에서 한약재를 통제하기 어렵고, 지금까지처럼 환자 맞춤형으로 용약의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한약재 가격의 변동성이나 안전성 관리비용을 모두 인정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첩약의 효능을 입증하려면 GMP시설에서 만든 제제를 사용해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첩약의 단점을 극복하고 보험의 가치와도 맞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바로 제제이다.
지금 제제는 보험급여가 되어도 한의사들이 안 써서 약제비 비율이 2% 남짓인데 첩약을 보험적용하겠다고 한다. 보험에 더 적합한 제제가 있는데 왜, 무엇 때문에 첩약을 보험적용하여 첩약의 미래가치를 낮춰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한의약의 특징을 죽이고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이다. 복합제제를 보험적용하는 것이 약사회의 반대로 어려워서인가? 첩약의 효과가 너무 좋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인가? 현재 제제를 쓰는 한의사보다 첩약을 쓰는 한의사가 더 많기 때문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의사들이 어떤 다양한 처방을 쓰건 첩약의 형태를 띠고 있으면 다 보험적용이 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된다면 엄청난 특권이다. 국가 보험체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언제까지 첩약으로 두루뭉술하게 버텨 나갈 수 있겠는가. 애매모호한 첩약으로 어떻게 미래를 위한 한약의 근거를 만들어 나가겠는가.

더 간편하고, 표준화도 가능하며, 보험의 정신에 맞고, 한약제약산업을 키워 국가경제에도 기여할 수 있는 제제를 보험에 적용하고 사용하자. 보험을 확대하고 싶다면 단미엑스제부터 200종으로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68종 단미를 보험에 적용하고 있지만, 주변국 중 보험급여 처방수가 가장 적은 일본도 생약 198종을 보험으로 급여해 주고 있다.

무엇이 정답이냐고 묻는다면, 정답은 없다. 우리가 충분히 논의하고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것을 힘을 모아 정답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은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하고 후회하면서 오답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부디 정답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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