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학 전체를 ‘중의학’ 명명은 무지의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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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학 전체를 ‘중의학’ 명명은 무지의 소산”
  • 승인 2013.07.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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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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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빛내는 석학들(8) 미국 존스홉킨스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 의사학자 마타 한슨 (Marta Hanson)

2011년 「Speaking of Epidemics
in Chinese Medicine」
온병에 대한 의사학적 논의 진행

“질병도 역사성과 사회문화성 있다”
‘질병의 전기’ 개념으로
동아시아의학의 다양성 추적

◇「Speaking of Epidemics in Chinese Medicine」
동아시아의학 전체를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 중의학)으로 명명하기 위한 중국의 밀어붙이기가 진행되고 있다. 국제 표준을 정하는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tandardization)에, 중국의 발의로 이러한 안건이 상정 되어있다. 다양한 의학 전통이 공존하는 동아시아에서 TCM을 그 전체의 대표로 하겠다는 생각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의사학이나 의료인류학적 시선으로 조금만 들어가 봐도 중국의 주장이 허구임이 드러난다. 동아시아의학을 연구하는 마타 한슨(Marta Hanson)의 연구는 이러한 중국의 주장이 억지임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
한슨은 미국의 손꼽히는 의대인 존스 홉킨스 의대의 의사학 교실 교수이다. 한슨의 연구는 질병과 의료가 사회, 역사의 장 속에서 존재한다는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2011년에 출간된 「스피킹 오브 에피데믹스 인 차이니즈 메디슨 (Speaking of Epidemics in Chinese Medicine: Disease and the Geographic Imagination in Late Imperial China)」에서 한슨은 온병(溫病)에 대한 의사학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책에서 한슨이 사용하고 있는 핵심적인 개념은 “디지즈 바이오그래피(disease biography)”이다. 질병의 전기라고 번역될 수 있을 이 개념을 통해서 의료가 역사 속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구성되고, 재구성되고, 변모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전기 속의 사람의 생애도 그 사람이 존재했던 시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리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재구성 되고 변화를 거듭하듯이, 질병도 역사성과 사회문화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질병은 역사적으로 상황 지워지고, 사회적으로 규정되며, 문화적으로 의미를 가진다 disease are historically situated, socially defined, and culturally meaningful”(p. 8)는 것이다. 한슨은 “디지즈 바이오그래피”라는 개념을 통해서, 황제내경의 시대에서부터 당대 중국까지, 온병이 변화해온 계보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서 한슨이 발견하는 것은 동아시아의학의 다양성이다. 각 지역의 역사, 환경, 사회적 관계(예를 들면 학파)의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동아시아의학은 하나의 이름으로 명명할 수 없는 복수(複數)의 의학이라는 것이다.
한슨의 연구에서 잘 드러나듯이, 동아시아의학 전체를 중의학으로 명명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역사적인 것에 대한 무지”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 한다. 첫째, 의사학적으로 의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듭한다. 동아시아의학은 황제내경, 상한론 등의 고전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 지역의 상이한 역사 속에서 복수의 의학으로 존재하고 있다.
중의학(TCM)을 동아시아 의학의 대표로 하려는 생각에는 이러한 역사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특히 중국에 사회주의가 자리를 잡은 1949년 이후 역사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이러한 어불성설이 주장되어지고 있다. 근현대 중국의학을 연구하는 의사학자들과 의료인류학자들은 1949년 이후의 중의학은, 이전의 중국의학과 구별되는 근대적 변형을 통해서 만들어진 의학임을 밝히고 있다. 중국식 변증론치를 표준화의 틀로 사용하고 그 틀 안에서 서양의학과의 결합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내용이 상당히 훼손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사회주의 국가 권력에 의해서 강력하게 추진됨으로써 짧은 기간에 극심한 변화를 경험한 사회주의 근대화의 산물이 중의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단절은, 당대 사회주의 중국의 국가주도 전통의학을 지칭하는 TCM이라는 용어가, 중국의학 자체도 대표하기 힘든, 협소한 용어임을 의미한다.
둘째, 중의학을 동아시아의학의 대표로 하려는 중국의 강변은 근대 이후 각각의 사회에서 전통의학이 경험한 변화의 다양성에 대한 무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근대를 특징짓는 이름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국가와 정치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근대적 국민국가(nation-states)의 출현이다. 근대 국가는 의료를 강조한다.
공중보건이 주요한 근대 국가의 의무로 떠오르면서 각각의 국가들은 의료를 관리하고 통제하려 한다. 의료시스템을 국가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고, 의료인들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의료행위를 국가가 관리하는 근/현대적 변화가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다. 각국의 전통의학들은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미증유의 변화를 경험한다. 그 전통의학이 아유르베다든지, 티벳의학이든지, 한의학이든지 상관없이 근대국민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격심한 변화를 경험한다. 당대 중의학이 경험한 변화 또한 그러한 변화의 비근한 예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의 내용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각 국가는 각각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컨텍스트 속에서 보건의료시스템을 정립하며 그 시스템의 다양성이 각 전통의학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중의학의 ISO 표준 주장은 이러한 근대 국가의 형성과 맞물린 전통의학의 사회적 변화의 다양성에 대한 무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중국의 어불성설은 나름의 지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중의학의 세계화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얼마 전에 읽은 아프리카 전통의학에 대한 책에서도, 60년대에 이미 중의학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변화하는 탄자니아 전통의학의 모습이 기술되고 있었다. [「바디즈, 폴리틱스 앤드 아프리칸 힐링 (Bodies, Politics and African Healing: The Matter of Maladies in Tanzania)」 (2011) 저자: Stacy Langwick].
9월 산청에서 열리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는 한의학이 중의학과 다름을 알릴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아시아전통의학을 연구하는 세계적 학자들에게 그 차이를 밝히고, 중의학을 동아시아의학의 표준으로 명명하려는 중국의 주장이, 의학의 역사성 사회성을 무시하는 강변임을 밝힐 수 있는 기회이다. 이번 학회에 마타 한슨도 참가한다. 동아시아의학의 다양성을 주장한 한슨이, 산청 학회장에서 비춰질 한국 한의학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연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김태우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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