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참가하는 석학들 (2) 펜실베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나탄 시빈(Nathan Sivin)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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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참가하는 석학들 (2) 펜실베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나탄 시빈(Nathan Sivin) 박사
  • 승인 2013.06.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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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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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문화 관점으로 동아시아 의학 핵심 개념 풀어

올해 9월 산청에서 열리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대회(ICTAM, International Congress on Traditional Asian Medicine)는 국제아시아전통의학회(IASTAM,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raditional Asian Medicine)가 3~4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국제학회이다. IASTAM 소속 학자들 중에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나탄 시빈(Nathan Sivin)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대(大)학자이다.

1931년생인 그는 1968년에 이미 「Chinese Alchemy」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중국의 과학과 의학에 대한 전문가로 자리를 잡는다. 동아시아 의학사와 과학사를 전공하는 시빈은, 이후 계속되는 열정적인 학술발표와 후진양성을 통해서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외국학자 중 리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시빈의 저작들을 시기별로 읽어 보면, 그의 동아시아전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치우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올곧은 시선을 위해서 그가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양사람으로서 동아시아 의과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한자문화권에 진입하기 위한 언어적 장벽이 문제가 되지만, 시빈과 같이 한문 원서 독해 능력을 갖춘 학자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직면해야하고 고민해야하는 것은 ‘비교’의 문제이다. 시빈이 동아시아 의과학과 서구의 의과학을 드러내 놓고 비교하지 않더라도, 그가 서양사람이라는 사실이 비교연구의 구도를 규정한다. 미국인인 시빈은, 그가 나고 자란 서구문화와 그 문화가 배태한 서구의 의과학이라는 참고(reference)와의 비교를 통해서 동아시아 의과학을 바라보게 된다.

그의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서양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시빈을 비교연구의 문제에 상시적으로 노출되게 만든다. 서구의 독자들은 서구문화의 토대위에서 동아시아 의과학에 접근하기 때문에, 그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두 문화의 바탕 위에서 발전한 동서 의과학들의 유사점과 차이를 ‘비교’해서 논의해야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연구의 구도는, 서구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전통을 재단할 수 있는 위험에 서구의 연구자들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킨다.

특히, 근대의 도래 이후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 위계적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위험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시빈은 이러한 위험성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 극복이 시빈의 저작들에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제공하여, 그가 대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피해갈 수 없는 ‘비교’의 상황에서, 건강한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시빈이 활용하고 있는 것은, 먼저 폭넓은 역사적 안목이다. 시빈이 다루고 있는 동아시아 의과학의 역사는 기원전의 시대에서부터 당대의 중국까지 그 역사적 폭이 넓다.  

◇The Way and the Word

시빈이 캠브리지 대학의 로이드(Lloyd) 교수와 함께 2002년에 발표한 「The Way and the Word」는 B.C. 400에서 A.D. 200년 사이의 고대역사를 논하고 있으며, 그의 「Traditional Medicine in Contemporary China」는 당대 중의학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시대에 대한 시빈의 연구는 특정 시대의 의과학 현상을 일반론으로 상정할 수 있는 위험을 극복하게 한다.

또한 폭넓고 깊이 있는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구체적 역사적 정황 속에서 동아시아 의과학의 면모를 파악하는 시빈의 노력이 그의 관점을 편견과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있다. 역사적 안목과 함께, 인류학 사회학 등 인접학문의 논의를 융합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시빈의 치우치지 않는 관점에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1998년에 발표한 논문「The History of Chinese Medicine: Now and Anon」에서 시빈은, 그동안 의과학 역사의 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인류학의 ‘문화’라는 개념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시빈의 저작들은, 그가 반세기 연구의 과정 속에서 유지하고 있는, 건강한 관점을 잘 드러낸다. 앞에서 언급한 「Traditional Medicine in Contemporary China」는 중의학교과서[新編中醫學槪要]를 최초로 번역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의학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심대하다.

◇Traditional Medicine in Contemporary China.

또한 전반부 200페이지의 분량에 중국의학의 역사와 동아시아의학의 개념과 관점에 대한 충실한 해석을 제공하여, 후반부의 번역을 접하는 서양사람들에게 동아시아의학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적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전반부의 해석에서 시빈의 역사적 안목이 두드러진다.

당대의 중의학은 면면히 내려오는 전통이 아니라, 근대 이후 특히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탄생 이후의 급격한 변화를 체화하고 있는 전통의학이라는 것을, 근대 이전의 중국의학과 근대 이후의 중의학의 차이를 통해 예시하고 있다.

또한 시빈이 가진 인류학과 사회학에 대한 관심은 그가 비교문화의 관점으로 동아시아 의학의 핵심 개념들을 풀어나가고 있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서양의 독자들을 염두해 두고 음양을 설명하는 시빈의 비교문화의 관점을 보자.

“비록 음과 양은 구분되지만, 그 핵심은 음양이 분류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음양은 현상들을 단순히 고정된 카테고리로 나누거나 또는 어떤 주어진 특성과 성질을 비교하지 않는다. 음양의 사유는 주로 ‘역동적인 과정’을 설명하는데 적용된다” (p. 64, 필자의 번역 및 강조)라고 하면서, 시빈은 서양사람들이 음양을 대할 때 서구적 사유 방식 때문에 빠지기 쉬운 분류체계라는 오해를 경계하며, 본의를 전달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빈이 견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의과학을 바라보는 바른 관점은 세계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한국의 한의학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서양사람인 시빈이 결국 경계하고 있는 것이, 서구적 관점을 통한 비서구 전통의 전용을 지시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한다면, 한국사람인 우리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오리엔탈리즘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민족주의(nationalism)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의학유산에 대한 자부심은 중요하지만, 한의학의 세계화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지나침은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시빈이 견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의과학에 대한 치우치지 않는 관점이 그를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게 했듯이,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 한의학을 세계적인 의학으로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빈의 작업들이 예시하고 있는 폭넓은 역사적 안목과 비교문화의 관점은 앞으로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여러 가지 작업들에서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긴 역사적 안목과 다른 문화의 입장을 생각하는 문화적 배려는, 왕성한 에너지로 가득찬 한의학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데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태우 / 경희대 한의대 교수·의료인류학

쭑The Way and the Word(위)와 Traditional Medicine in Contemporary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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