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中)-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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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평화진료단 일지(中)-정경진(청년한의사회장)
  • 승인 2003.07.0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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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術의 場으로 바뀐 銃彈의 현장


■ 5월 16일 ■

여기는 금요일이 한국의 일요일과 같아서 진료는 쉬는 대신 방문진료를 선택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만성질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진료를 하는 방식이다. 숙소에서 쉬기보다는 짧은 일정 속에 하나라도 활동을 더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라크국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도 의료실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두 여섯 집을 방문진료했다. 경찰, 택시기사, 엔지니어, 은행원 등 직업이 다양했으며 가족구성도 7명에서 37명에 이른다. 일부일처제에서부터 일부다처제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인데다 고혈압, 당뇨 등을 가지고 있으며 치료 시기를 놓쳐버린 경우가 많았다. 점심식사를 거르면서 진료를 강행, 오후 5시에 방문 진료를 마쳤다.

허기도 지고 기운이 빠져 정신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동행한 아마르 씨가 수고했다며 이라크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아마르 씨는 28세의 젊은 친구로 전에는 한국의 중고차를 사서 파는 도매상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헬스센터(진료소)를 관장하는 지배인으로 나중에 병원을 세울 계획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한방치료에 대한 호의도 높아서 잠시 틈만 나면 나더러 좀더 남아주기를 간청하곤 했다.

이라크 음식은 달고 짜고 시고 자극성이 강하며 기름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고기는 주로 양고기와 닭고기 그리고 드물게 소고기를 먹으며(돼지고기는 안 먹음) 야채는 많이 먹는데 시큼하고 강한 자극성이 있는 향료와 함께 섞어서 먹는다. 덥고 건조한 기후 속에서 열량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먹는 양이 많아 우리가 적게 먹으면 서운하게 생각하는 습성이 있어 참 난감하기도 했다. 집 초대에 거절해도 안 되고 주는 음식도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을 좋아한다. 주식으로는 빵을 먹고 가끔은 밥을 먹기도 한다. 여기서 먹는 빵은 정말로 맛이 있다. 고소하고 느끼하지도 않아 한국사람도 충분히 먹을 만 했다.

■ 5월 17일 ■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지 환자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복도를 꽉 채운다. 아침부터 북새통이다. 점점 속도가 붙어서인지 150 명 정도 본 것 같다. 오늘은 소아환자를 많이 보았는데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환자를 직접 볼 수 있었다. 五遲症 환자나 龜胸, 龜背 환자 그리고 소아마비 환자 등이다. 나이를 먹어도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환자를 신비한 동양의학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데리고 온 것 같다. 나 역시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서 침을 놓아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개인의 의료이용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으로 영양사업이나 위생사업이 동시에 진행될 때 국민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라크여인들은 대개 뚱뚱하고 살이 물렁물렁하여 습(식사)에 대한 문제가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활동이 우리나라 조선시대와 같이 협소한 환경 속에서 살아 가다보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쉽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으니 식욕으로 풀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온 몸이 다 아프다는 여성들의 하소연속에서 침놓고 부항을 하고 뜸을 뜨다보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몸은 힘들지만 침에 대한 부담감이 한국보다 훨씬 덜했다. 한국에서는 침을 왜 맞아야 하는지, 침이 아프지 않은지 등등의 문제들 때문에 치료하기 전에 환자들에게 설명을 해줘야하는 부담이 있었으나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 스트레스도 덜 받는 편이다. 환자를 상대로 말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바그다드 경험을 통해 새삼스레 알게 된 셈이다.

■ 5월 18일 ■

진료에 이골이 서서히 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환자들과 친해지고 환자 다루는 요령도 체득했다. 통역자들과도 진료외적인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친해졌다. 이라크 치과의사로 자기 병원이 미사일에 맞아 진료할 수 없게 되자 여기서 통역일 하는 분이 계신데 이 분은 한국에 대한 동경이 많아 한국으로 꼭 데려가 달라고 하며 한국의사들의 보수는 얼마나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진료실은 밖에 비하여 시원한 편이나 침대베드 대신 매트리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일이 더 힘이 들었다. 이준혁 선생은 벌써 이라크 말을 배웠는지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척척 하는 수준이다.

우리가 진료실로 사용하는 건물은 이라크 군시설로 미국과 전쟁시 최후까지 총탄이 빗발치던 전쟁터중의 하나라고 한다. 지금도 건물 외벽에는 총탄자국이 수없이 나 있어 그 때의 치열한 전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군시설이 지금은 의료시설로 탈바꿈하여 총과 포탄 대신 사랑과 의료의 손길로 변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마치 연예인처럼 주위를 둘러싸고 손을 만지고 인사하는 이라크 아이들을 볼 때 하루의 피로는 싹 사라져버린다.

바로 이거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 많은 생기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이라크 아이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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