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학부생 함께 하는 ‘기초한의학 학술대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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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학부생 함께 하는 ‘기초한의학 학술대회’ 제안한다
  • 승인 2013.05.0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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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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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의학계에는 수많은 학회가 있다. 맏형격인 한의학회를 비롯하여 동의생리학회, 동의병리학회, 본초학회, 방제학회, 경락경혈학회 등 여러 기초한의학 학회와 침구의학회, 사상체질의학회, 한방내과학회, 한방부인과학회 등의 여러 임상한의학 학회가 있다. 그리고 아직 정회원 학회가 아닌 학회와 비공인 학술 모임을 포함하면 기억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많은 학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학술대회다운 학술대회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수의 주제별 학술발표가 동시에 진행되고 수백 장의 포스터가 학회장을 가득 메우는, 그런 행사가 있어야 할 텐데, 고작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구두 발표 몇 건 하고 끝내버리는 행사가 대부분이다. 사실 이들 학회에 참여하는 인원이라고 하면 이곳 민족의학신문이나 한의신문에 실리는 각 학회의 ‘인증샷’에 서 있는 그 사람들이 거의 전부다.

필자는 지금껏 이어지는 공중파 방송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며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종종 놀라곤 했다. 발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유물이 다양한 해석과 함께 방송에 소개될 때는,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저런 밀도 있는 영상물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이는 여전히 내게 놀랄 만한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매년 열리는 역사학대회에 수천 명이 몰리는 것을(지금도 최소 1천 명은 모인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런 역량을 표출할 수 있었던 데는 평소 역사학계가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이 든든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학대회만큼 큰 행사는 아니지만 매년 두 번씩 열리는 의공학회의 학술대회도 많은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교수나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현직 엔지니어와 학부생까지 참여하여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활발히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 이 분야의 학문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언제까지 부러움만을 느끼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도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의학 전공자들의 개인적 역량이 결코 작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그 답은 최소한의 참여 인원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분과학회 구성원으로는 무리다.

때문에 필자는 기초한의학 분과학회 전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기초한의학 학술대회’를 제안하고자 한다. 기초한의학 분야의 학술대회라면 학부생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으며 고학년이라면 의미 있는 학술적 성과를 발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국의 한의대생이 함께하는 대규모의 행사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의대 학부생의 중요한 행사였으나 근래에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는 행림제(杏林祭)의 한 행사로서 기초한의학 학술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술대회는 한의계의 학술 풍토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한의 분과학회의 영세한 재정 상황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며 분과 학회원 사이의 상호 관심과 교류를 넓힘으로써 현재 학술지 평가에서 자주 지적되고 있는 과도한 자기인용(동일 학회지 내 인용) 문제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따금씩 펼쳐보는 사진 자료 중에, 1915년 한의계로서는 지극히 어려운 시절에 열렸던 ‘전선의생대회(全鮮醫生大會)’의 사진이 있다. 화면에 수백명의 인물이 빽빽이 앉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77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선배들이 모였던 그 시기보다 우리는 훨씬 좋은 시절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학부생을 포함하여 한의계 전체의 학술 역량을 결집할 정례적 행사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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