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 아내가 결혼했다
상태바
영화읽기 | 아내가 결혼했다
  • 승인 2013.04.18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정식

임정식

mjmedi@http://


어떻게 평생 한 남자만 사랑할 수 있어?
그런 도시가 있다. 꿈에라도 가고 싶고, 그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도시. 자유, 열정, 꿈, 사랑…. 그런 뜨거운 언어가 넘실거리는 이국의 도시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손예진)에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그런 도시다.
감독 : 정윤수
출연 : 손예진 김주혁 주상욱 김병춘
주인아는 축구광이다. FC 바르셀로나의 열혈 팬이다. 맨유를 꺾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최고의 팀. 그런데 남편(김주혁)은 정반대다.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라면 죽고 못 산다.
이들은 안방에서 축구전쟁을 치른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대리전이다. 팀 성적에 따라 울고 웃고, 승패에 따라 집안일 당번이 정해진다. 축구 얘기로 처음 말을 트고 결혼에 골인까지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주인아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다. 그녀는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지중해의 햇살처럼 뜨겁고, 그 바람처럼 자유롭다. 바르셀로나의 축구 스타일이란다. 통하는 게 있는 것이다. 하기는 싱글일 때 이미 ‘커밍아웃’을 했다. “평생 한 남자‘만’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부녀’ 손예진은 폭탄선언을 한다. 애인이 생겼고, 그 남자와도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당돌하지만 또한 당당하다. “남편 하나 더 갖겠다는 것일 뿐”이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남자가 첩을 두는 게 익숙했던 가부장제 나라에서, 일처이부제를 당차게 주장한다. 그녀는 진짜로, 서울과 경주에서 두 집 살림을 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혁명을 주장하는 건 아니다. 끈적거리지도, 퀴퀴하지도 않다. 코믹 멜로영화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적정 수위의 러브신을 곳곳에 배치해 관객의 시선을 자극한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손예진의 연기도 발랄하다.
주인아는 곧 암초에 부딪친다. ‘두 남편’을 갖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자 홀연 종적을 감춘다. 통장을 털어 비행기를 탄다.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바로 축구와 자유와 열정의 도시다.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누 캄프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할리우드 명감독 우디 앨런도 바르셀로나에 빠졌다. 수년 전 국내에도 개봉했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원제 Vicky Cristina Barcelona). 영화는 20대 여성들의 봄꿈과 같은 사랑을 다룬다. 깨고 나면 잊혀질 자유연애인데, 배경 도시가 바르셀로나다.
주인공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와 비키(레베카 홀)는 단짝이다. 성향은 정반대다. 크리스티나는 ‘로맨스라면 고통마저도 감미롭다’고 생각하는 낭만파다. 결혼을 앞둔 비키는 보수적인 모범생 학구파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상황이 바뀐다. 자유분방한 화가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의 노골적인 유혹이 발단이다. 위험한 매력 앞에서 먼저 무너지는 건 보수적인 비키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곳이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일까. 지중해를 건너온 푸른 바람이 여인의 옷자락을 들추고 은밀한 욕망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결말은 파국을 피해간다. 해피엔딩에 가깝다. 주인아는 ‘두 남편’과 함께 웃으며 누 캄프 경기장을 빠져나온다. 크리스티나와 비키는 일정에 맞춰 뉴욕으로 돌아간다. 이제 바르셀로나는 추억의 도시가 된다. 상업영화임을 감안하면 이해 가능한 설정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일상 탈출을 꿈꾼다. 그렇다면 마음속에 ‘바르셀로나’를 하나쯤 품어보는 것도 좋겠다. 일부일처제와 같은 오래된 전통에 틈을 내고, 스스로 갇혀있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깰 수 있는 곳. 그 고장에서는 자유와 꿈, 열정을 다시 채울 수 있다. 꿈꾸는 것은 자유다. 구엘공원을 비롯한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명작과 누 캄프 경기장을 만나는 것은 이들 영화의 숨은 매력이다.

임정식 / 영화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