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쁜 ‘전공의 하루’…못 잊을 너구리굴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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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쁜 ‘전공의 하루’…못 잊을 너구리굴 소동
  • 승인 2013.04.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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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이선행

mjmedi@http://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이 선 행
마스터리의 전공의 생활
강동경희대학교한방병원 한방소아과 전임의
http://blog.naver.com/civil011  
2월 셋째주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근무를 인수인계 받기 위해 그 전날 일요일에 병원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2내과에 배정된 3명의 신입인턴은 2내과 R1 선생님들께 가서 인턴이 해야 할 업무를 들었습니다.

1. 노티표 수정: 교수님별로 인턴이 배치되는데 해당 교수님과 레지던트가 볼 수 있도록 매일의 변화(Lab, 생체징후, I/O, 증상변화, 처방 등)를 노티표에 기록한다. 레지던트용은 자세하게 적고, 교수님용은 간명하게 적는다.
2. 셀프라운딩: 레지던트 노티 전에 환자들에게 가서 증상 변화를 묻고 기록한다.
3. 회진: 교수님 회진오기 전, 환자 및 보호자에게 알려 준비시키고 순서대로 안내한다.
4. 발침: 교수님 혹은 레지던트 자침 후 20분 뒤에 발침한다.

5. 드레싱 및 술기: 매일 1~2회 드레싱, order가 나오면 술기를 시행한다.
6. 신환받기: 입원환자가 새로 오면, 정해진 양식대로 초진기록을 작성한다.
7. 액팅: 전침, 뜸, 부항 등 매일 정해진 대로 시행한다.
8. 자침: 주말에 담당 레지던트가 당직이 아닌 경우 자침 및 발침을 시행한다.

위의 내용은 어느 과를 돌든지 공통으로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2내과만의 인턴 업무를 알아봅니다.

1. 협진환자 노티표 작성: 20~30명 정도 되는 협진환자들(대부분 신경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의 주소증, 병실, 퇴원 상황 등을 매일 수정한다. 새로 협진의뢰가 들어오면 방문하여 간략한 문진 후에 협진환자 노티표에 추가한다.
2. 당직일지: 전날 당직 레지던트 및 인턴의 이름을 적고, 입퇴원 현황을 기록해서 의국장에게 제출한다.
3. 학생수업 준비: 본과 4학년 학생들의 실습기간이 되면 실습장소의 문을 열어놓고, 노트북을 설치하며, 빔프로젝트를 띄운다. 학생들이 회진에 참여하는 경우에는 학생들 전용 노티표도 뽑아놓는다.
4. 야식 배달: 인턴숙소에 야식이 배달되는데, 당직 레지던트 수만큼 의국에 배달한다.

인턴 업무 분배를 위해 3명의 인턴끼리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했습니다. 한 명은 야간에 응급실에 번갈아 들어가야 해서, 커버인턴과 제가 업무를 분담해야 했습니다. 기왕하는 거 처음에 힘든 것 맡는 게 좋아서 협진환자 노티표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고, 커버가 당직일지와 야식배달을 맡는 것으로 했습니다.

인턴의 업무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부분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회진 준비>발침 및 액팅>잡무 순이라고 어떤 동료가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회진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수님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에 잘못될 경우 눈 밖에 나서 지원하고자 하는 과 교수님께 안 좋은 소문이 들어가기 십상이며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됩니다.

교수님>>(호령)>>레지던트>>>>(불호령+페널티+알파)>>>>인턴

발침과 액팅은 직접 환자와 만나서 수행하기 때문에 Rapport 형성에 가장 좋습니다. 발침은 시간을 미룰 수 없기 때문에 급할 경우에는 커버 인턴에게 대신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환자에게 직접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늦어지거나 실수가 있게 되면 병원에 대한 평판도 떨어지고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게 되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좀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1. 노티표 수정: Lab, 생체징후, I/O는 다음날 간호사가 입력하기 때문에 미리 수정할 수 없으나, 처방과 협진상황(재활, 양약의 남은 날짜)은 전날에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전날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전날 미리 수정해 놓아야 다음날 아침 덜 바쁘게 노티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협진환자 노티표는 전날 미리 수정해 놓아야 아침에 병동환자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4시에 일어나서 의국으로 들어가서 보니 아직 Lab, 생체징후, I/O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6시는 지나야 올라옵니다) 대략 노티표를 수정했지만, 모두 수정했는지 확실하지 않았고, 잘 모르는 부분은 그냥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협진환자 노티표는 수정 시간이 부족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2. 셀프라운딩: 아침에 커버 인턴의 환자까지 모두 돌면서 수면/식사/소변/대변/땀/주소증변화 등을 물었습니다. 처음이라서 질문 포인트도 잡지 못하고 얼마나 시간을 배분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뒷 부분의 환자들은 간단하게만 묻고 이전 기록을 그대로 복사해서 레지던트 Notify 시간에 겨우 맞췄습니다.

3. 회진: 교수님과 회진을 다닐 때 1~2발짝 앞에서 순서대로 환자에게 안내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순서를 잊어먹어서 다른 방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고, 맨 뒤에서 교수님과 레지던트를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4. 발침: 전화가 오면 환자별로 발침 시간을 기억해 놓았다가 가서 발침합니다. 늦으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 유일하게 제대로 시행했습니다.

5. 드레싱 및 술기: 특별히 해야 할 술기는 첫날에 없었습니다. 매일 드레싱을 가능하면 오전 중에 끝내 놓는 것이 좋은데, 오전 중에 커버인턴 환자와 제 환자 모두 다 못했습니다.

6. 신환받기: 입원환자가 다행히 첫날에는 없었습니다. 입원환자가 있었다면 신환만 받느라 아무 것도 못했을 확률이 큽니다.

7. 액팅: 일부 환자들은 전침을 꽂아 놓고 발침 시간에 늦어서 간병인이 대신 발침해주었습니다. 뜸을 떠야 하는데, 교육시간에 배운 뜸은 크게 5종류가 있었습니다.

▲콘뜸 - 손톱 크기의 원뿔을 만들어 혈위에 3~5회 뜨거운 느낌이 올때까지만 뜹니다. 부착 및 화상 방지를 위해 바세린을 바르고 위에 뜹니다 . 직구 - 쌀알 반 크기로 떼어 혈위에 태웁니다. 콘뜸이든 직구든 옆에서 붙어서 뜨겁다고 할 때 바로바로 콘뜸을 떼거나 직구를 꺼야 합니다.
▲마니나 - 개량된 뜸으로 연기가 심하지 않습니다. 본원에서는 주로 암환자에 사용하는데, 온열작용이 강해서 거즈 위에 붙여 뜨거울 때까지(또는 다 탈 때까지) 사용합니다.
▲미니뜸 - 봉사활동에서 많이 쓰는 뜸 중의 하나지만 간접뜸이면서도 연기가 많이 나서인지 병원에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주로 온침 시행할 때 같이 사용합니다.
▲무연구 - 가장 많이 쓰는 뜸 중의 하나로 황토가 뒤덮여 연기가 심하지 않습니다. 한 환자 당 2~3개씩 쓰는 경우도 있고, 불 붙이고 올려 놓은 뒤 30~40분 뒤 모두 타면 간호사 스테이션에 갖다주도록 합니다. 거동이 힘들거나 한 경우 베드 옆 사물함에 놓으면 대신 찾으러 가기도 하고, 도난도 가장 많이 당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오공구 - 병원에서는 일부 안면마비 환자에게 사용합니다. 작용 범위가 넓고 온열 작용이 강해서 밑에 거즈를 깔고 사용합니다.

인턴 기간 도중에 별뜸이라는 까만 뜸도 사용하게 되었으나 인턴 시작 당시에는 5종류만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즈를 어떤 경우에 까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업무가 몰려서 바쁘기도 했고 계획했던 대로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육기간 동안 받은 공부를 제대로 복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콘뜸을 뜨러 갈 때에 거즈를 같이 들고 갔습니다. 거즈를 깔고 그 위에 콘뜸을 태우면서 뜨겁다고 할 때마다 밑에 거즈를 한 장씩 더 깔아서 뜸을 모두 태웠습니다. 당연히 환자와 보호자는 이전에 받았던 방법과 달라서 항의하기 시작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환자 보호자 분이 특히 예민한 것으로 악명 높으신 분이라 뭐라뭐라 했지만 무시하고 뜸을 모두 태웠습니다. 뜸의 연기와 거즈의 연기가 합쳐져서 병실은 너구리굴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방식으로 시행했어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상까지 입었다면 가장 높은 징계 감이었을 것입니다. 그 환자 분은 커버 인턴 담당이라 오후에 복귀한 커버 인턴이 사과드리고 다시 제대로 시행하고 마무리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커버인턴이 오후에 돌아와서 거의 아무 것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보고 경악을 했습니다. 밤 늦게까지 같이 다니면서 밀린 업무를 시행했습니다. 사람이 2명이어서가 아니라 좀 더 준비가 된 인턴과 같이 일해서 그런지 그 뒤의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뜸 사건 + 노티표 수정 미비 + 협진환자 노티표 수정 미비 + 회진 준비 미비 등으로 당연히 징계받아야 했으나, 다행히 첫날부터 커버를 하는 상황이 참작되어서 가볍게 넘어갔습니다. 여러가지로 힘들었지만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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