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서재 #64 ‘한의과가 없는 병원은 3류라고?’
상태바
한의사의 서재 #64 ‘한의과가 없는 병원은 3류라고?’
  • 승인 2013.02.21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정태

임정태

julcho@naver.com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의사의 한방열공기 리뷰(2)

 

임정태
이제마뛰어넘기
근거중심한의학을 통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한방내과전문의
http://blog.naver.com/julcho
(전호에 이어)

일단 첫번째 질문. 저자는 한약이라는 것은 서양의학적 검사가 없던 시절에 증상의 조합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면서 가장 확률 높은 약재의 조합을 찾아낸 것이기에 서양의학적 검사 결과를 크게 고려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p.140). 원인이나 임상양상이 전혀 다른 혈관성 파행이냐 신경인성 파행이냐에 상관없이 파행에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 잘 들었다는 내용을 보니 ‘처방’ 자체를 선정할 때 서양의학적 검사, 진단보다는 역시 증상의 조합을 중시하는 게 맞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저는 한의약 진료에서 의학적 검사와 진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질환에 어떤 치료 옵션이 더 효율적인지 결정하려면 당연히 진단이 중요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협심증으로 인한 흉통을 호소하는 사람보다는 GERD로 인한 흉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반하사심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반대로 초기 위암환자인데 반하사심탕 때문에 오심이 좋아져서 위암 진단시기가 늦어진다면 안되지 않을까요.

두번째 질문. 누군가는 일본식의 한방진료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병명-처방 매칭은 한의학의 기본을 왜곡한다고 말이죠. 저자도 그에 대해서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의 한약치료에 환자들이 만족한다면 그런 방식으로 쉽게 한약처방을 하고 효과가 없을 때는 좀 더 개개인에 개별화된 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한의약의 저변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데 위염에 반하사심탕을 루틴하게 쓰는 방식은(물론 그런식으로 한약을 쓰면 안된다고 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치료율도 꽤 높을 것이고 실제로 임상에서 first choice로 선택하는 한의사 선생님들도 많을 테니까요. 의사들이 위염에 스티렌을 쓰는 것 같은 경우도 병명-처방 방식이지만 상당한 치료율을 담보하리라 봅니다(임상연구를 했으니 스티렌 시판이 가능했겠죠). 병명-처방 매칭은 그 방식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한의사 입장에서는 열증의 환자에게는 오히려 안 좋을 거라는 예상은 가능하지만 한의사 방식의 진료가 더 낫다 혹은 못하다는 연구가 없으니 강하게 주장할 수 없는 입장이고 지금 현재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알 수 있는 것은 병명-처방 방식의 치료 또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라는 점입니다.

그밖에도 한의약적 치료에 과학적 근거를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라든가(p.32~4), 임신 중에도 한약복용은 할 수 있다(p.84), 한방공부를 하고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환자에게 ‘어디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라고 물어보게 되었다는 것(p.63), 환자의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동맥박동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았다(p.59), 양방에서는 허약한 아이에게 효과적인 약제가 없기 때문에 이때 한방약이 나타나 제 역할을 수행한다든가 하는 말을 의사가 한다는 것(p.116)은 참 재미있습니다.

일본 한방전문의(인정의) 입장에서 바라본 일본의 한의학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면 경희의료원 한방순환신경내과 조기호 교수님이 쓰신 한국 한의사 입장에서 바라본 일본 한의학 이야기 ‘일본 한방의학을 말하다’’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정창운(blog.naver.com/lunarmix), 권승원 선생님(blog.naver.com/kkokkottung)이 운영 중인 블로그에도 일본한의학 소개가 많습니다. 일본한의학에 대해 알고 나서 가장 많이 바뀐 점은 과립제가 꽤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과립제를 가지고 RCT를 수행하고 SCI 저널에 논문을 내는 시대에 ‘과립제는 효과없음’ 운운하는 건 시대착오적입니다. 거기에 탕약보다 훨씬 편하고 보기 좋습니다. 전에는 무조건 탕제가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은 불과 3~4년 전입니다. 요양병원에 와서 한약은 보험 엑스제만 쓸 수 있게 되면서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효과에 대한 의구심으로 안 썼지만, 이준우 선생님 칼럼을 읽고 처음 몇 개 써보고 나서는 생각보다는 타율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난 2년 동안 1500만 원 가까이 40여 가지의 엑스제를 사용해 보았는데 비용 문제로 외래에 오는 환자들에게 탕약은 잘 안 권하게 되고 엑스제를 편하게 권하게 되면서 한의약의 문턱을 낮추는데 한약제제가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소청룡탕’을 달라고 오는 환자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이 책의 저자는 한약투약 경험이 꽤 다양한데 아마도 그것은 보험적용이 되어 한약 투여의 문턱이 낮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른 일본처럼 팔미지황환, 오령산, 억간산, 마황탕 같은 한약제제 뿐만 아니라 연고제인 자운고까지 보험적용이 되어 편하게 처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부러움이 읽는 내내 들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