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서재#64 '한의과가 없는 병원은 3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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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서재#64 '한의과가 없는 병원은 3류라고?'
  • 승인 2013.02.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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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태

임정태

julcho@naver.com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의사의 한방열공기 리뷰”(1)

 

임정태
이제마뛰어넘기
근거중심한의학을 통한
역동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한방내과전문의
http://blog.naver.com/julcho
한의사 공중보건의 중에 병원에서 근무하는 병원공보의(병공의)는 몇 명 없습니다. 당연히 같은 지역에 근무하는 10여 명의 병공의 중에 한의사는 저 하나 뿐입니다. 2011년 초에 처음 부임했을 때 술이 한두 잔 돌고 한의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하진 않았지만 결국 결론이 나지 못할 걸 알면서 정신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이 흘러가고 그 때 한 선생님께서 ‘한의학은 수 천년간 새로 밝혀진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동의보감이, 온병학이 어쩌고 사상이 어쩌고 했지만 별로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집으로 가다가 그것보다는 쏟아져 나오고 있는 한의학 임상연구 논문들 이야기를 해 줄 걸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내가 의학을 이해하는 것에 비해 이 곳 병공의 의과 샘들의 한의학에 대한 이해 수준이 너무 낮아 “의사이자 한의사인 사람이 쓴 한의학에 대한 책이 있으니 한 권씩 선물하겠다” 하며 부산대 한의전의 윤영주 교수님이 쓰신 ‘한의학 탐사여행’을 한 권씩 선물하고 그 후에 이야기 하자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10권 정도 구매해서 한권씩 선물해 드렸지만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로 의사들 앞에서는 앞으로 논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만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의과 병공의들과 이야기 하다가 한의학 치료법에 대한 대화를 하면 논문으로 나와 있는 것만 이야기 하고  에비던스(evidence)가 있는 거라고 꼭 덧붙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뭔가 허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의학 지식의 90% 이상은 논문 베이스가 아니고 내가 직접 환자를 보면서 치료효과를 확인한 것들도 있는데 논문이 안 나온 그런 내용들은 전혀 의미가 없는 지식들인가 하는 그런 허전함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 허전함을 어느 정도 힐링(!)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의사선생님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방을 의심쩍게만 받아들였던 입장에서 이제는 한방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오로지 이런 마음 하나로 책을 써내려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윤영주 선생님은 한의사 면허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들은 ‘에이 그분 어쨌든 한의사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순수한 ‘의사’니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책에 열거하는 증례들은 대단히 어려운 증례라기 보다는 우리가 임상에서 흔히들 접하는 증례들이 많습니다. 단지, 한의사들이 얘기하는 케이스(case)들은 잘 안 믿어주려고 하지만 의사가 말하는 케이스(case)라면 의사 선생님들이 좀 더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보의가 끝날 때 쯤에는 이 책을 선물해야 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한방과가 없는 병원은 ‘삼류’ 다”(p.70)라고 했다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인식이 보편화 되는 날이 얼른 왔으면 합니다.

저자가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식면역학 박사학위를 딴 혈관외과 전문의입니다. 여느 병원 봉직의들처럼 과중한 업무와 음주로 몸무게가 88kg에 허리둘레가 98cm나 되었는데 영국유학이 끝나 귀국 후 계지복령환과 대시호탕을 복용하면서 몸무게 70kg, 허리둘레 78cm로 줄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화분증과 치핵도 없어지고 혈압도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의학 따위는 믿을게 못 된다’고 생각하던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가 세계를 휩쓸 때 자신이 주 1회 근무하던 도쿄 아이세이 병원에서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했는데 360명의 직원을 반으로 나누어 보중익기탕을 4~8주간 복용한 군과 비복용군의 인플루엔자 발병비율을 조사했는데 복용군에서는 1명, 비복용군에서는 7명이 인플루엔자가 발병하여 한약의 효과에 대해 좀 더 확신하게 되고 이 결과를 2010년 일본내과학회 총회에서 발표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일본의 의과대학에서 한의학 강의를 할 때는 “양방약은 직구, 한방약은 변화구”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의대생들이 한의학이라는 훌륭한 의료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서양의학이라는 직구를 빠르게 던질 수 있도록 연습을 하라고 독려하고는 10~20년이 지나 빠른 직구를 던질 수 있게 되더라도 치료되지 않는 질환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보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그 때 한방사용을 고려해도 된다고 알려줍니다. 자기가 한양방이 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분개하기 때문에 저자는 한방은 보조바퀴라고 이야기 합니다. 보조바퀴라고 하면 의사들도 수긍하는데 보조바퀴로 시작을 하다보면 어느새 한약이 진료에 꼭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 한다는 거죠. 그리고는 ‘한방 따위는 괴상하다고 무시하였던 예전의 저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전국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고민 중이었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이야기들은 처방을 선택할 때 서양의학적인 검사결과를 고려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과, 병명-처방을 매칭하는 것이 과연 한약을 잘 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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