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칼럼 - 역사는 발전하는가? 그리고 진실은 승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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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칼럼 - 역사는 발전하는가? 그리고 진실은 승리하는가?
  • 승인 2013.01.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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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한창호

mjmedi@http://


 

한창호
동국대 한의대 교수
나는 역사는 발전하며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는 믿음을 버리기 싫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은 많은 경우 진실이 은폐되고 부정한 자들이 승리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그래서 난 역사는 발전하며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없다.

우연히 중3 큰아들의 책상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이 있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대학시절 이후로 난 학생운동가 유시민 씨를 참 좋아했었다. 그의 감성과 열정, 독서와 생각의 깊이 모두를 흠모했었다. 이는 어린 시절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집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를 사랑하고, 특히 ‘별 헤는 밤’과 ‘참회록’을 입 언저리와 가슴 한가운데 가지고 살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유시민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항소이유서’를 읽고서 이다. 1985년 5월 그의 항소이유서 마지막 문구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네크라소프(Nekrasov, 1821-1878)의 시를 인용했었는데 한 동안 내 가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아들의 책 읽기용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2011년에 나온 3판 22쇄 였다. 책은 많은 그림이 추가되고 내용도 보충되어 두께도 400쪽이나 되어 내 책보다는 2배였다. 당시 대학을 함께 다니던 벗들에게서 받은 선물인 나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초판이었다. 그는 머리말에서 ‘1980년대 청년 지식인의 지적 반항’이라고 비판한 한 역사학자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역사를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정치권력이 제 멋대로 통제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토론을 억압하는 그릇된 풍토가 사라져 아무도 이 책이 전하는 ‘지적 반항’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진정 바란다고 썼다.

역사는 발전하는가? 그저 반복하는가?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는 20세기 영국의 정치가이며 역사학자인 E.H. Carr (1892-1982)가 1961년 그의 모교인 케임브리지대학 강의에서 처음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근대 역사학의 시작점인 랑케(Ranke)는 “역사가란 자기 자신을 죽이고 과거가 본래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가를 밝히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하며, 오직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하며 논리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즉, 역사학이란 과거의 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역사인식론을 발전시킨 크로체(Croce), 콜링우드(Colling wood) 등은 “모든 역사적 판단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실천적 요구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성격이 부여된다. 서술되는 사건이 비록 먼 옛날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역사가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현재의 요구와 상황이며 사건은 다만 그 속에 메아리 일 따름이다”라고 하여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해 현재 문제의 관점에서 과거를 보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과거의 역사란 객관적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직 역사가의 해석이 중요한 것이라는 해석학적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곧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종말은 진정 회의주의와 실용주의의 길 밖에 없는 것인가?

니체는 “세상에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카아는 역사란 “선택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이나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고, 그 곳에서 행동의 지침이 될 만한 결론을 이끌어 내며, 인간의 정신은 관찰된 사실 중 부적절한 것을 버리고 적절한 관찰된 사실을 골라내고 이어 붙이고 모양을 만들어서 지식이라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였다.

안병직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역사란 역사가의 해석에 의존하며, 해석은 역사가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가의 가치에 의존한다.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진실에 관한 것이다. 카아는 역사가에게 기대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의 객관성’이라기 보다는 ‘가치의 객관성’이라고 믿고 있다.”

장준하 엿보기와 몇 가지 판결

유신 시절 박정희 정권에 항거하다 옥고를 치른 고 장준하 선생이 39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지난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은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974년 징역 15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장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고 유족에게 사죄의 뜻을 전했다.

장 선생은 1974년 7개월 가량 옥살이를 하다 협심증으로 병 보석으로 풀려났었고, 이듬해인 1975년 8월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타살 논쟁이 일었다. 지난 정부 국가인권위에서는 장준하선생의 의문사에 대한 규명을 위한 심의가 있었으나 실체를 규명하지는 못했었고, 지난해 8월부터는 이장과정에서 의문사 진상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이번 재판부는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공적으로 사죄를 구하는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진다”고 하면서, “국민주권과 헌법정신이 유린당한 인권의 암흑기에 시대의 등불이 되고자 스스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고인의 숭고한 정신에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고 밝혔다. 선고에 앞서 검찰은 “장 선생에게 적용된 법이 대법원에서 위헌 무효로 결정됐기 때문에 무죄를 구형한다”고 밝혔다.

또 한가지 판결이 있었다. 현 정부의 권력의 중심이며, 만사형통으로 불리던 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현 정부 인수위와 조각 및 공천의 실세로 이명박 정부의 정권창출의 공신중의 공신 정두언 전 의원이 나란히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모두 부정한 자금을 받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해야 되나? 차기 대통령 취임식 1개월 전에. 정확이 5년 전 1월에 이들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고 있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지난 수요일 저녁에 대한한의학회 운영이사회에 참석차 늦은 시간 협회회관을 방문하였다. 같은 시간 회관내 다른 장소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년 한해 내 마음의 유행어중 유행어를 꼽으라면 비상대책위원회일 것이다. 뭐 이미 제 작년에 개그콘서트에서 유행한 프로그램 이름이지만 또 다른 개그가 일년 내내 나라 안팎, 한의계 안팎에서 일어난 거라고 해두자.

요즘 비상대책위는 협회 이사불신임에 대한 총회 의결사항이 유효한지를 확인하는 투표를 하고, 협회 집행부와의 불화로 인해 사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며 비대위 위원장이 사퇴의사를 밝히고, 다음날 비대위는 회의를 소집하여 위원장 사퇴의사철회를 의결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세기까지 이 땅에서 국민의 건강과 질병의 치료를 담당하던 의사들은 일제에 의한 국권의 침탈과 함께 질병치료의 일선에서 쫓겨나 의생(醫生)이 되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수년 후 1953년 한의사제도가 이 땅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보건의료 전문직으로서의 한의사들의 역할은 역사와 시대와 함께 발전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법과 제도가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진화하지 못한 까닭이다. 한의학과 한방의료가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면서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한약처방이 천연물 신약으로 둔갑하고, 진찰에 필요한 의료기기 사용권이 제한되어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없고, 효과가 우수한 한약제제를 값싸게 국민에게 공급하는데 여러 장벽에 가로 막혀있다.

그렇다. 역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미래는 그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들의 노력과 투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그리고 결국 진실은 승리한다. 하지만 진실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희생과 승리를 위한 투쟁이 있어야만 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수확을 얻을 수 있으랴. 다만 이 땅에서 한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오로지 환자를 위하고, 국민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만을 경주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완비되기를 기대한다.

세상은 정의롭고 역사는 발전한다. 우리는 이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땅에서 모두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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