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정리 | 천연물신약이 한약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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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리 | 천연물신약이 한약인 까닭은…
  • 승인 2013.01.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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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기자

신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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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의 잦은 변경 통해 처음 취지 상실
한약제제 가져다 '천연물신약'이라 명명

현재 국내에서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허가된 약은 조인스정, 스티렌정, 아피톡신, 시네츄라 시럽, 모티리톤 정, 신바로캡슐, 레일라정 등 모두 7종이다.
한의계에 따르면 이들의 주된 특징은 한의학서적과 한의사 임상을 근거로 개발됐다는 것이다. 특히 신바로의 경우 자생한방병원의 청파전을, 레일라정의 경우 고 배원식 선생의 활맥모과주를 토대로 하는 등 결국 이들 천연물신약은 한약을 뿌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국내에서 허가된 천연물신약은 국제표준 개념에서는 한약제제인 셈이다. 참고로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된 한약제제가 중국에서는 중약신약이라는 용어로, 일본에서는 한방약, 서양에서는 허벌 메디슨(Herbal Medicine) 혹은 보태니컬 드럭(Botanical Drug)이라고 불린다.

그렇다면 한의계의 주장대로 결국은 한약에 뿌리를 둔 한약제제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천연물신약이라는 이름으로 양방보험급여약이 되고 의사들에 의해 처방될 수 있었을까?

◎천연물신약 문제의 배경
천연물신약의 왜곡된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천연물신약 연구는 1992년 ‘신동의약’ 프로젝트에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신동의약 프로젝트는 아스피린, 탁솔, 페니실린과 같은 신약을 개발하고자 했지만 1997년 실패로 평가됐고, 이후 1999년에는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안이 통과돼 2000년에 제정됐다. 당시 법안에 관한 공청회 자료집을 살펴보면 천연물신약은 ‘자연물에서 추출한 유효성분약’을 의미했다.
그러나 2000년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 제정 이후 천연물신약의 개념이 조금씩 달라진다. ‘천연물신약은 전통한약에서 발전된 것’이라며 전통의학지식을 기반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발전시키고자 한다는 목표가 더해지며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정부로부터 총 5600억 원을 지원 받는다.
대한한의사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안재규)에 따르면 천연물신약 개발팀은 어떻게든 ‘전통한의약의 개발’이라는 명분을 가져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는 “단일성분 추출 천연물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며 한의약연구개발비를 지원받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천연물신약은 전통한의학 지식에서 온 것’이라는 천연물신약 연구개발계획팀의 주장과 ‘천연물신약연구와 한의약제제연구는 구별된다’는 두 개의 논리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2003년 ‘천연물신약 한약제제 개발센터’가 생기는 등 천연물신약은 한의약 개발과 발전기금에 기대어가는 형국이었다.
이후 2006년 제2차 천연물신약 개발촉진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는 본격적으로 전통 한약제제를 천연물신약화 할 것을 공표했다. 2007, 2008, 2011, 2012년 지속적으로 식약청 고시를 통해 천연물신약허가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2011~2012년 천연물신약이 집중적으로 허가된다.

◎식약청 고시 변경을 통한 천연물신약 개념 변경
1998년 식약청 고시에서는 ‘생약제제’를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로서 한방의학적 치료 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제제를 말한다. 다만 천연물을 기원으로 하되 특정 성분을 추출·정제하여 제제화한 것은 생약제제로 간주하지 아니한다”고 정의한다.
또 1999년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심사에 관한 규정에서는 생약제제, 한약제제 허가사항을 분리해서 규정하고 있다. 한약제제는 “기성한약서 혹은 그 외의 의서에서의 처방, 처방에 근거한 새로운 처방”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외의 생약을 이용한 의약품은 전부 생약제제가 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문제는 생약제제가 한약제제 허가 자료에서 ‘효력시험’ 자료만 더 제출하면 자료제출의약품 생약제제로 허가받을 수 있도록 된 점이다. 생약제제가 기성한약서의 투여를 근거로 독성과 약리작용 자료 대부분을 면제 받은 상태로 의약품이 허가되면서 ‘서양의학적 치료’를 위한 의약품으로 허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2002년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심사에 관한 규정을 보면 ‘천연물신약’을 “천연물신약개발성분을 이용하여 연구·개발한 의약품 중 조성성분·효능 등이 새로운 의약품”이라고 정의한 내용을 추가했다.
천연물신약의 의약품 허가 자료제출에 관한 사항도 ‘생약·한약제제 및 천연물신약 등의 제출자료 항목’에 따로 기재해 천연물신약은 일반적인 양약의 신약이기도 하지만 생약·한약제제의 신약도 포함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러나 문제는 생약·한약제제의 신약과 천연물신약의 자료제출 상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학적 입장에서 본 천연물제제라는 개념의 생약제제가 기성한약서를 근거로 독성과 약리작용 자료제출을 면제받는 것은 2002년 고시에서 명시된다.
2007년 식약청 고시에서는 천연물신약이 생약·한약제제의 신약과 합쳐진다. 즉 ‘생약·한약제제 및 천연물신약 등의 제출자료’의 이름이 ‘생약·한약제제의 제출자료’로 이름이 변경되며, 2008년 또 한 번의 고시변경으로 생약·한약제제 중 신약이 천연물신약이라는 종전의 개념에서 확대돼 자료제출의약품 생약제제 중 일부가 천연물신약으로 규정됨으로써, 신약이 아닌 자료제출의약품도 천연물신약 범주에 넣겠다는 의미로 퇴색된다.

결국 현재 허가된 천연물신약들은 모두 자료제출의약품 중 1항에 해당하는 ‘생약제제’로, 기성처방을 서양의학적 효능으로 설명한 생약제제를 천연물신약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는 “생약제제가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한 약이라면 이에 합당한 의약품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실제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는 한약제제로 사용될 때 기성한약서를 근거로 의약품 허가 규정을 면제하는 것을 그대로 따른다”며, “그렇다보니 한약제제로 개발된 것은 전부 생약제제로도 다시 허가될 수 있으며, 여기에 ‘새로운 효능’을 덧붙이면 자료제출의약품의 4항에 해당돼 천연물신약이라 불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연물신약의 문제점 및 해결방안
앞서 살펴보았듯 법령의 잦은 변경을 통해 현재의 천연물신약 개념은 왜곡돼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천연물신약은 한의서나 한의사 임상에 근거한 한약이므로 법령에서 한약제제로 분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생약제제나 양의사용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다시 말하자면 천연물신약은 한약제제이며 한의사가 처방해야 할 한약임에도 한의사의 처방권 조차 명시돼 있지 않다.
비대위는 “현재 천연물신약은 한의사의 처방권이 제한돼 있고, 허가 과정에서 양약에 비해 필요한 허가 요건이 간소화됐기 때문에 양의사의 처방 시 필요한 의약품 정보도 매우 부족한 상태”라며, “천연물신약을 한약 전문성을 갖춘 한의사가 처방할 경우에는 부작용 및 오남용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양의사의 처방은 의약품 부작용 및 오남용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고, 이는 국민 건강에도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이어 비대위는 “복지부와 식약청은 현재 자행되고 있는 비전문가에 의한 천연물신약 처방 및 활용을 즉각 금지하고, 천연물신약과 관련된 모든 법령과 정책 등을 즉시 백지화해야 할 것”이라며, “이 같은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독립한의약법’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할 ‘한의약청’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은주 기자 44juliet@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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