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자발적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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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자발적 가난」
  • 승인 2012.12.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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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소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 순간 삶은 행복해진다
E. F. 슈마허 著
이덕임 역
그물코 刊
저는 요새 코앞에 닥친 18대 대선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내 아나키스트를 자임했었는데, 지난 해 서울 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이 급작스레 고조되어 근 한 달여는 신문과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거든요. 물론 쏟아지는 보도를 접하면서는 마음은 십중팔구 불편해지곤 했답니다.

의(義)는 안중에 없고 오직 이(利)만을 추구하는 무리들의 실로 어처구니없는 논리 때문이지요. “오히려 내가 잘못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어 10여 년 전의 책 「자발적 가난」을 다시금 꺼내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소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이상 정치에 관심을 쏟느라 독서를 게을리 한 탓이 크지만, 과잉소비가 일상화된 현 시대에 누구나 한번 쯤 곱씹어야 할 문제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자발적 가난」은 동서고금의 위대한 현인(賢人)들이 이야기한 아포리즘 모음집입니다. 대철(大哲)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해서 톨스토이, 간디, 노·장자, 세네카(Seneca) 등은 물론이고, 「소박한 밥상」의 저자 니어링(H. Nearing), 「월든」의 저자 소로(H.D. Thoreau),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슈마허(E.F. Schumacher) 등이 설파한 잠언·격언·경구들을 한데 모은 책인 것이지요.

그런데 편집자인 밴던브뤼크는 유독 슈마허를 대표 저자로 꼽았습니다. 짐작컨대 엮은이는 슈마허의 유명한 생태적 명제 - “Less is more(결핍이 풍족이다)!” - 로 책 전체를 일이관지(一以貫之)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책은 ‘자발적 가난을 위하여’란 소제목의 1장부터 ‘자발적 가난과 현대 사회’라는 10장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어느 부분을 펼쳐 읽더라도 의미하는 바는 매 한 가지 - “덜 풍요로운 삶이 오히려 더 큰 행복을 준다.” - 이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궁핍한 소위 ‘빈곤’의 상태가 아니라면, 스스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 단순한 삶, 이른바 ‘가난’의 추구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수많은 현자들의 목소리를 빌어 역설하고 있거든요.

감명 깊게 읽은 글귀는 하나 둘이 아니지만, 저는 특히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함도 사치에 해당한다”는 세네카, “대부분의 사치, 이른바 삶의 안락함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뿐더러 인류 진보의 명백한 장애물이다. 동서양의 현자들은 겉으로 부유한 자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없으며 내면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부자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소로, “자신이 넉넉히 가졌음을 아는 이는 극히 적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지 아는 이는 더욱 적다”는 윌리엄 펜의 음성이 귓전을 울리더군요. 한의사라는 직업병(?!) 덕택에 저도 모르게 자연주의자 성향이 짙게 밴 모양입니다.

아마 이 글이 신문 지면에 실릴 때엔 대통령이 이미 결정되었을 텐데, 모쪼록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되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값 9천 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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