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66) - 「西藥活套」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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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66) - 「西藥活套」①
  • 승인 2012.12.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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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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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藥合編 본떠 만든 의생용 서약지침

「서약활투」

연말연시가 다가오고 있는 이즘에 색다른 책 한 가지를 선보이려 한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소화8) 京城 中央印書 에서 발행한 책으로 서명은 있던 「西藥活套」라 되어 있다. 서약, 즉 洋藥을 다룬 책이니 구태여 여기서 소개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묘하게도 정작 이 책을 주로 사용한 부류는 醫生 신분으로 격하된 한의들이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당시 의생이나 한지의생으로 규정된 이들이 사용하는 서약 매뉴얼로 발행된 것이다. 판권부에 편집겸 발행인으로 申明均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지만, 그는 다만 출판사의 대표인 것으로 보인다. 따로 저자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 첫머리에 醫學硏究社란 단체를 표방하고 있어 당시 의생규칙 공포와 일방적인 식민지 약무정책 시행에 따라 시류에 맞추어 엮어진 편집성 저술로 보인다.

어떻게 꾸며졌을까 하는 호기심을 앞세워 책장을 들춰보니 범례의 첫 조목에 다음과 같은 말이 먼저 눈에 띤다. “본서는 東醫方藥合編에 하야 著述호대 醫師와 醫生의 임상참고서로 목적함.”(이하 필자 윤문) 곧, 東醫學에서 임상지침서로 활용되었던 「방약합편」을 본떠 집필했다는 말도 희한하거니와 서양에서 도래한 양약을 어떤 측면에서 기존의 「방약합편」을 본떠 만들었다는 말인지도 궁금하다.

이 말에 대해서는 다음 조목의 표현과 본문의 배열을 눈여겨 살펴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두 번째 조목에서 “본서는 약성, 약방, 부록 三編에 분하야 논술함”이라고 전제하고, 이어 “약성편에는 신구약을 勿論하고 치료 상 最必要한 약물 600여종을 선정하야 약성과 용약을 개론함”이라고 하였다. 또 뒤이어 “약방 편에는 치료 상 불가결할 경험방 1백 수십 예를 擧하야 용법과 주치를 개론함”이라는 말과 그리고 “부록에는 용약상 관계가 深重한 극독약표와 극량표와 중요한 동서병명대조표를 첨부함”이라고 되어 있다. 본문의 구성이 비록 「방약합편」처럼 상중하 3統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방제를 수록하고 있진 않지만 본문의 내용을 약성, 약방, 부록으로 3대분하고 약물과 경험방을 같이 결들인 점은 분명 전통방식에서 借用한 것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또 “卷首에 隨症用藥例를 게재하야 臨病投劑의 지침을 示함”이라고 한 원칙도 결국 「방약합편」 본문에 앞서 권두에 실린 活套針線의 효용성을 적용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만, 그 다음 조문만은 시대적 한계 상황을 적시해 주는 표현이어서 서글픈 심정이 앞선다. “약명은 朝鮮文으로 書한 原音 외에 일본음을 傍付하야 現時 실용의 편의를 取케함” 결국 이 책에서는 영문으로 된 약명이나 명칭에 대해 한글로 발음을 적은 외에 한자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적어야 하는 불편을 감내해야만 했던 것이다.

또 “方藥의 용량은 모다 그람(瓦)법에 의함”이라고 원칙을 정해 진즉 미터법으로 통일해서 표기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용되어오던 관용표기에 대한 해설도 달려 있는데, 1茶碗은 약 100그램, 1酒盞은 약 50그램, 1食匙는 약 15그램, 1刀尖은 약 2그램, 1滴은 약 0.06그램 등으로 비정한 것이다. 범례 뒤편에는 곧바로 그람법을 도표로 꾸며서 알기 쉽게 대조해 놓았다.

수증용 약례에는 한자로 적힌 병명이 열거되어 있는데, 내과병에 感冒, 麻拉里亞, 麻質斯, 기관지염 등 37종 병명이 수록되어 있고, 각 병명 아래 해당 치료처방이 열거되어 있다. 예컨대, 감모에는 解惑散, 亞必散, 安必散, 撤曹散, 撤曹水 등이 올라 있다. 또 산부인과병으로 임신구토, 陣痛微弱, 子宮復故不全 등 7가지 질병이 올라 있고 피부병에는 다한증, 도한, 습진, 습란, 화상, 동상, 鷄眼 등 8종, 花柳病이라는 항목에 淋疾, 梅毒, 下疳, 橫 4종, 안이비인후병에는 안검연염, 결막염, 야맹증 등 9종 질병이 들어 있다. 한의에게 양약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던 시대의 아픔이 전해지는 투약지침서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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