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12) 문현주(영국 Durham 대학 의료인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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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12) 문현주(영국 Durham 대학 의료인류학 전공)
  • 승인 2012.12.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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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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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건강'의 구체적 해결방법 찾고 싶어요"

 

지난 9월 Durham 대학 입학식 때의 문현주 씨

  여성전문한의원을 개원한 지 10년째를 맞은 문현주 원장(40)은 한의원을 후배에게 부탁하고, 의료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 9월 영국 북부에 위치한 Durham 대학에 진학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에 대한 지향을 놓지 않기’인 거 같아요. 지금은 어렵더라도 늘 마음에 두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삶의 방향은 그쪽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유럽의 소도시에서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하기’는 사실 제 오랜 버킷리스트의 하나였는데,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못할 것 같고,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마음먹고 준비하게 되었지요.”

‘불임’이 낙인이 되는 사회에 대해 고찰하고파

원광대 한의대 91학번인 그는 93년 한약분쟁의 모든 풍파를 겪은 세대다. 수업이 없던 그때에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했는데, 여성학 관련 동인지인 「또 하나의 문화」를 주로 읽고 토론하면서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그때 고민했던 여성문제가 그녀의 삶의 지향점이자 기반이 되었다. 자연스레 ‘여성건강’을 살피는 부인과를 선택했고, 졸업 후에는 불임전문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대학원에서도 부인과 전공을, 2003년 여성전문한의원인 ‘움 여성한의원’을 개원했다.

오랫동안 여성질환을 진료해온 문 원장이 의료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동안 저는 한의사로서 주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치료를 했는데요. 더불어 마음을 돕기 위해 임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가급적 많이 들어주고 지지해주려고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 같은 심리요법도 공부해 함께 나누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그래서 임상심리상담사를 초빙해 난임 환자들을 위한 집단상담프로그램이나 개인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자꾸 제가 십 년 전 이야기했던 ‘사회적 건강’이라는 부분이 걸리는 거예요.”

의료인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사회적 건강’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불임이 낙인이 되는 사회에 대한 성찰, 임신하고 싶어도 임신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은 그대로 둔 채 단지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인류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또 다양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시공간을 확장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식과 바이오테크놀로지에 관심

유학생활을 한 지도 한 학기 남짓, 수업이 거의 세미나 식으로 진행되어 읽어가야 할 논문들이 방대하다고 한다.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하며 지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과정은 MSc(수업석사)로, 1년 과정이다 보니 수업과정이 아주 빡빡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여기는 3학기제로 첫 학기에 네 과목 정도 듣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여성의 생식건강과 출산, 양육의 과정을 진화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수업인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또 시험관시술, 착상 전 유전자검사, 줄기세포 연구 등 과학과 생명공학을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한 수업도 있는데, 저는 이 과목의 프로젝트로 ‘한국의 보조생식술’에 대한 연구를 해볼 계획입니다. ‘Public Health’(공중보건)’도 건강과 사회의 관계를 살피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요.”

문 원장은 의료인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생식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난임 환자들을 만나면서 특별히 시험관시술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아닌데 급하게 시험관시술을 서두르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어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요. 또한 정부의 난임 환자 지원책이 시험관시술에 집중되면서 한국사회가 ‘시험관 권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고요.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건강한 임신을 돕기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지원책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맥락으로 생식기술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문 원장이 임상을 하면서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혔던 점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했다.

“가장 어려운 난관은 늘 예측이 어렵다는 거지요. 특히 임신의 경우는 이제 임신이 될 만큼 충분히 건강해졌는데 기다리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바로 임신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늘 임신을 하는 여성들 옆에서 그저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조언자로 생각하고, 임신을 위한 최적의 건강상태를 만들어주는 것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임상을 해왔는데도 결과가 늦어지면 혼자서 많이 좌절하고 힘들어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 한국에 있을 때 한의원 자체적으로 온라인 뉴스레터도 꾸준히 발행해 왔는데, 지금 유학생활도 간간이 뉴스레터를 통해 환자들과의 소통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려운 의료정보들을 환자들의 말로 좀 쉽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수많은 검사와 치료를 받고나서도 자신이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사실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의료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 중 신뢰해도 좋을 만한 정보들을 걸러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해외학술지의 논문결과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꼭 의료정보가 아니라도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들도 함께 나누려 노력했단다.

세계적인 학자들 논문 마음껏 읽는 재미 쏠쏠해

오롯이 학생신분으로 돌아간 유학생활, 가장 만족하는 점은 무엇일지 물어보았다.

“유학생활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나름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가족들과 함께 유럽의 낯선 문화를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공부 한 가지만 한답니다. 애들은 엄마가 영국 와서 같이 놀아준다 하면서 늘 ‘고시원’ 같은 생활만 한다고 불만이 가득하지요. 다행히 남편이 살림도 다 하고 애들도 돌봐주고 있어서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이 감사하기도 해요. 매일 읽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reading list들, 써야 하는 에세이들로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학자들의 논문을 마음껏 읽고 토론하며 지식을 확장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첫 학기도 곧 마무리 되어간다는 그녀는 다음 학기에는 ‘보조생식술’ 관련 프로젝트와 석사논문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란다.

“석사논문으로 영국의 여성들은 난임을 어떻게 경험하며, 영국의 난임 여성들이 치료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문화적 인자는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영국에서도 보완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임신을 돕는 보완의학과 기존의 서양의학과의 갈등은 없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난임 여성들과 각 분야의 치료자들을 직접 만나는 현장연구도 계획 중입니다.”

영국에 오기 전 그녀는 10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실제 난임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움이야기-불임은 질병이 아니다」라는 책을 냈다. 유학생활이 끝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움이야기 시즌 2’를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문 원장은 “젊은 후배들의 경우는 더 많은 열정과 기회들이 있으니 혹 시행착오를 겪게 되더라도 좀 더 다양한 분야로 과감한 발걸음들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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