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의녀, 팔방미인 조선 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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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의녀, 팔방미인 조선 여의사」
  • 승인 2012.11.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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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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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학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했던 그녀들

한희숙 著
문학동네 刊
의녀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서 한 발 벗어난 책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노련함이 느껴져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이 넘지 못한 벽도 있다. 한 번 잘 못 끼워진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채우는 일이 이렇게도 어렵나 싶어 좀 성질이 나기도 한다. 의녀를 약방기생으로 몰아붙인 김두종의 첫 단추를 홱 뜯어버리고도 싶어진다.
그 역방향도 존재한다. 대장금에 대한 지나친 평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과잉 친절은 이전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친절한 장금이는 중종의 간병을 맡았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장금이가 중종의 처방까지 내린 것은 아니다. 내의들이 번히 눈을 뜨고 있는 마당에 일개 여의가 감히 지존을 위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저 밤사이 임금 곁을 지키며 투약의 결과를 예리한 눈으로 지켜보고 의관들에게 보고함으로써 다음 처방을 원활히 내리도록 도왔을 뿐이다.

다소간의 한문해독 능력과 일정 수준의 의학지식만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라도 훤히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똘똘하다고 뽑힌 여종들이 혜민서에서 시험에 통과하고 초학의를 거쳐 간병의가 되면 이제 병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의 간병은 지금의 간병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병을 본다는 뜻이다. 글로 배우는 단계를 넘어 직접 환자를 보며 임상을 익히는 단계이니 수련의 과정이다.

이를 지나면 자신이 속했던 원래 관청으로 재배치되어 의녀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다. 지위 높은 사대부들 집안에 불려다니는 일은 내의녀들 몫이었고 그 외 양반가를 출입하며 부인들 진찰하고 치료하는 일은 각 관청 의녀들이 맡았다.

내의원에서는 맥의녀, 침의녀, 약의녀 등으로 나누어 불렀다. 이 중 약의녀는 약 달이는 의녀가 아니라 처방 내리는 데에 일가견 있는 의녀였다. 궁에서는 내의들이 있어서 그렇지 궁 밖에서 의녀들은 자유롭게 활보하며 처방을 내렸다. 심지어 비빈의 처방을 직접 내리고 의관은 임금에게 보고만 한 예도 있다.

그러나 의녀는 여의 집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었다. 관비들 중에서는 최고위급이었지만 여전히 천했다. 누락자도 많았기에 그 스펙트럼 역시 넓었다. 내의원 의관들조차 자문을 구했던 학식과 경험 높은 여의가 있었는가 하면, 이름만 의녀였지 가무에 더 소질을 보인 이들도 있고, 내놓고 기녀의 길을 걸은 이도 있다.

그래도 끝까지 대접받는 직업이 의녀였다. 궁궐의 차비대령의녀들은 실력만 좋으면 늙어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지방 관청 소속 의녀들도 양반네들에게 불려다니며 호구지책 삼기에 충분했다. 예나 지금이나 헛 욕심만 없으면 굶을 일 없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9천 원)

홍세영 / 경희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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