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의대 입학을 고심하는 수험생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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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의대 입학을 고심하는 수험생들에게
  • 승인 2012.11.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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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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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에 의협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에서 한의학을 비방하는 광고를 수험생들이 자주 보는 웹사이트에 올렸다가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올해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라는 단체에서 또다시 비슷한 광고를 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광고의 효과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수험생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고민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본 시평을 통해 한의사에게 전하는 글을 써 왔지만 오늘은 이들 수험생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고등학교 때부터 필자는 줄곧 자연대나 공대를 가고 싶어 했고, 두 번 공대에 낙방한 후에야 한의대를 고려 대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의대냐 한의대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삼수를 하기 싫어서, 아니 어쩌면 삼수를 하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한의대를 선택했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이 지원하는 학과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해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한의학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의학은 어차피 어떠한 방법으로든 질병 치료를 연구하면 되겠지만 한의학은 과연 타당한 방법론적,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의 필자로서는 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마음속에 위안을 삼았던 것이 ‘그래도 수천 년 누적된 경험이 있으니 뭔가 해 볼만 한 것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으니.
그렇게 엉성한 생각으로 진학한 한의대였으나 전공 공부는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한의대를 가겠다고 한다면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할 것이다.

왜 그러한 생각을 하는가? 한의학이란 학문에는 새롭게 도전해 볼 주제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갈수록 전문화, 세분화되는 현대의 학문 체계에서 신참들이 뭔가 의미 있는 도전을 해 볼 수 있는 분야는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의학은 지금도 그것이 가능하다. 왜냐? 한의학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현대 학문으로서 한의학의 역사는 아주 짧고 여전히 많은 부분이 새로운 ‘학문화’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어떠한 종류의 융합 과학은 새로운 학문으로서 창조되고 있다. 허나 그들은 이미 확립된 방법이나 새로 얻어진 확실한 방법을 통해 경험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학문인 반면 한의학은 매우 넓은 범위의 경험 영역을 이미 가지고 있는 채로 여기에 얽힌 자연, 인문, 사회적 제반 맥락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흥미진진한 도전 과제를 던져준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있는가? 인간은 왜 죽는가? 하는 등등의, 과거 철학의 연구 주제였던 이런 문제가 이제 어느 정도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한의학에는 이처럼 분야를 넘나드는 주제들이 참 많고, 전부는 아니겠지만 대다수가 새로운 영역에서 쉽게 해결을 볼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그 해결과정은 자유의지 문제의 과학적 해결 과정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학자로서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어떤가? 해 볼 만하지 아니한가.

지금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비방에 열을 올리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궁극적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의대를 ‘멘붕스쿨’로 만들겠다는 꿈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엔지니어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곳의 수장에게 한 마디 전할까 한다. 최종 원인에 대한 답이 궁할 땐 신을 찾는 사람들처럼,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전문가에게”를 외치는 의사들 앞에 과학적 비판의 칼날을 내리지 말기 바란다. 의사들의 전문가 주의는 결국 하느님을 ‘의느님’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수험생들 역시 이런 이율배반적인 한의학 비난자들의 작태를 보며 진정한 과학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순수한 염원을 내려놓지 말기를 바란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창의적인 인재들은 이공대로 많이 가야 한다고. 지금처럼 의약계열로 몰리면 안 된다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의대는 좀 다르다. 한의대는 정말로 무언가를 묵묵히 배우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그것도 학문 자체를 재창조하는 종합적 창조력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고. 자신이 창의적이라 생각하는 수험생들이여, 자신 있게 한의대의 문을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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