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더 이상 한의사에게 음양오행이 필요한가?
상태바
한의학 위키칼럼 & 메타블로그 - 더 이상 한의사에게 음양오행이 필요한가?
  • 승인 2012.11.08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창운

정창운

lunarmix@naver.com


우리가 본격적으로 ‘한의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경향성을 띤 의학이론들의 집합이 본격적으로 형성이 된 것은 많은 역사가들로부터 ‘이른 근대화’라고 불리는 송대 이후이다. 이른 시기에 이미 세계화를 이룬 당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롭게 세워진 송 제국은 모든 면에서 근대적인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교육을 통한 엘리트의 재생산, 자본주의적인 경제제도의 도입, 자연과학의 발전 등 송나라의 사회경제적인 면모는 현대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형태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엘리트들의 가슴 속에 있던 중요한 사고체계는 성리학으로,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간심리학을 절묘하게 이은 하나의 거대한 전체였다.

다만, 이 성리학에는 자연과 인간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혁명적인 발상이 뿌리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의 자연과학적 지식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었으며 후에 서양에서 개발된 것과 같은 오류를 검증할 과학적 방법론 역시도 발견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근대적인 관점과는 정반대로, 인간의 시점에서 자연을 결정하는 치명적인 실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이르고, 부족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의학(한의학)은 그 이전과는 다른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가게 된다.

한의사들은 한의대에서 의사학을 배우고 나오기 때문에, 송대 이전의 한의학에서는 본초학 서적의 양적 증가나 몇몇 초창기 의사들의 저술정도가 눈에 들어올 뿐 송대 이후에 만개하는 체계적인 학술이론의 발달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째서 송대에 그러한 급속한 변화가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의사학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깊은 이해를 가진 경우는 많지 않다.

한의사들은 2~3세기에 쓰여졌다는 「황제내경」 「상한론」 「금궤요략」과 같은 원전을 통독하고서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게 되지만, 이러한 서적들은 의외로 송대 이전의 기록과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송대 이전의 한의학과 그 이후의 한의학은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의학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러한 한의학의 변화가 사회경제적인 변화에서 성립된 것이고, 학문적인 토대로는 성리학의 성립이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겠지만, 텔아비브 대학 아사프 골드슈미트 교수의 「한의학의 진화 960-1200」에서는 이러한 한의학의 변화에 대해서 「내경」과 「상한론」이 결합하는 내적 과정에도 주목하고 있다.

「상한론」은 대단히 직관적인 서적이다. 증상이 있고 그에 각각 대응하는 치료가 있다. 물론 일부의 병리적인 요인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경우에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임상매뉴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후대 의가들에 의해서 수많은 이론과 설명이 덧붙여지지만, 그것을 「상한론」 그 자체에서 읽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싶었던 배후를, 상한론 연구라는 이름을 빌린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점은 본초학 서적이나 송대 이전 의가들의 서적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점이다. 배후의 이론체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대개 임상적인 현상을 기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내경」은 대단히 추상적인 서적이다. 다양한 이론들이 착종되어 있지만, 정작 치료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송대 이전의 의학서적들과 연관성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다른 의서들이 모두 치료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치료를 논하지 않은 의학서적인 「내경」은 일종의 ‘생리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송대 이후의 의서에서 볼 수 있듯, 「내경」의 이론체계에 기반하여 진단하고 그에 맞는 치료 방법을 선택한다는 과정을 그 이전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송대의 의학혁명은 생활 속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다룬 소박한 유학서적을 우주 전체의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거대 체계로 변환시킨 성리학의 성립과 마찬가지로 종래의 치료를 중심으로 한 기술적 의학에 ‘과학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이론적 체계를 부여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송 휘종의 의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당시의 새로운 과학정신의 만개, 역병과 같은 의학적 문제 해결과 같은 실용적 목적들이 결합하게 되어 송대의 의학발전이 진행된 것이다.
교정의서국을 통해 ‘정립’된 의학 표준서적들, 의사교육 커리큘럼의 제정 등 통합과 표준화의 모습은 확실히 근대적이고, 오히려 어떤 점에 있어서는 작금의 한국 한의계보다 발전된 면모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한론」과 「내경」을 잇는 것, 기술과 과학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송대의 의서로는 「상한명리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성제총록」 「화제국방」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의학서 역시 송대에 성립이 된 것이나 이는 이전 시대의 노력을 총 결집한 것으로 신선한 맛은 없다.

「상한명리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한론」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을 음양오행에 기반한 「내경」의 이론체계를 결합시킨 작업은 송대의 의학혁명이 한의학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더 이상 의학은 이전의 의서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많은 경험들을 나열하거나 기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의 작동체계를 파악하고 그 이론에서 사실을 추론해내는 ‘과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유완소를 시작으로 ‘금원사대가’라고 부르는, 기존의 의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의학이론가들이 등장하고, 醫는 인간을 치료하는 여러 수단 중의 하나이던 과거의 모습을 일신하게 된다.
금원사대가의 이론체계가 쌓여가며 한의학의 변화는 우리가 아는 ‘한의학’의 모습을 다져나가는 것임을 읽어 낼 수 있고, 그들의 이론을 종합한 「동의보감」까지가 아마 송대 이후의 시작된 한의학 체계의 변화가 마무리 되는 한 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의보감이 송대 이후 계속된 장기지속적인 한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임진왜란의 마지막에 완성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면이 있다. 한 시대가 마무리 된 것이다.

시계바늘을 현대로 돌리면, 송대의 ‘과학’이 어떻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쉽게 목도할 수 있다. 근거중심의학이라는 현대의학의 방법론을 통해서 충분히 한의학의 치료 기술들이 입증되고 있지만, 한의학에 대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비판은 결국 한의학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오행에 연원한 오수혈 이론을 통한 침술은 잘못된 것이고, 외견으로는 도저히 한의학의 침 시술과 구분할 수 없는 동일한 외양을 한 시술인 IMS시술은 그 이론적 배경이 해부생리학, 신경학에 있으므로 시술 자체도 전혀 다르거니와 침술과는 전혀 다른 정당한 치료라는 주장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송대의 의학혁명 이후 새로운 정신을 가지게 된 의사들이 ‘과학적 방법’이 아닌, 이전의 ‘경험적 치료’를 하던 의사들에게 가하던 비판과 맞닿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양 근대의학의 태동에서 거꾸로 ‘이론적’인 치료를 하는 의사를 비판하고 ‘경험적’인 치료를 도입한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라 아이러니한 면도 있다.

한의학 이론에 대한 외부의 압력은 점차 거세져가고 있으며, 이에 한의계는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로에 있다. 송대의 의학혁명에서 알 수 있듯, 한의학이 원래부터 음양오행과 같은 이론체계와 긴밀히 결합된 것은 아니었다. 금원사대가의 이론을 들여다보아도 그들의 ‘과학’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었다.

한의학이 일정한 실체가 없는, 역사적인 것이라고 할 때 지금 이 시점에 과연 ‘이론’을 문화재마냥 간직해야할 이유는 딱히 찾기 어렵다. 어찌 보면 이론이 의사의 진료를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박제화된 이론 그 자체를 간직하기 위해 한의사가 도구화 되어버린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얼마 전 중국 칭화대학의 한의학자들이 쓴 책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한약의 각 성분을 분석해서 한약 방제와 본초, 화합물이라는 각각의 층위에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들에서 새롭게 한약 성분들의 ‘군’을 분류한 것이 이채로웠다. ‘본초’의 새로운 분류방식이 생겨나는 모습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한의학자로 여기며 한의학의 전통경험을 첨단의 현대과학과 융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얼마 안가서 이 새롭게 이식된 ‘이론’에서 새로운 사실이 도출되어 나올 것은 자명한 것 같다. 이것은 옆 나라에서도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천년 전에도 할 수 있었던 작업이다. 지금, 여기에서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정 창 운 / 생각의 무덤

근거중심의 한방진료확립에
관심이 많은 초보 한의사
http://blog.naver.com/lunarmix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