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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미래 짊어질 젊은 연구자들(10)-나선삼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 박사과정)
“인류학적 관점에서 한국 한의사의 정체성 찾고파”
2012년 11월 08일 () 11:00:49 김은경 기자 carax30@mjmedi.com

   
지난 1일 경복궁 역에서 만난 나선삼(42) 연구원은 “이곳은 사람 사는 동네 같아서 좋다”며 아담한 카페로 인터뷰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인류학이 사람 사는 것에 대한 총체적인 학문인 만큼 그도 골목 구석구석 소소한 것들을 이야기 소재로 꺼내 놓았다.
“인류학을 전공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떻든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인류학이 뭔지 잘 모르는데다 제가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제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웃음)”라고 말했다.

솔직한 대답만큼이나 그의 이력도 다소 특이했다. 나선삼 연구원은 1995년에 경희대 한의대 졸업 후, 임상을 몇년 했다가 1999년에 영국 워릭대학교 철학과 정신의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와 부원장 생활을 조금 한 후, 2003년도에는 강동 함소아한의원을 개원하여 대표원장으로 환자들을 진료했다.

2006년도에 창립된 한국의철학회에서 이사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에서 개최된 어느 국제 심포지엄에 왔다가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한의원을 찾게 된 옥스퍼드대 의료인류학 주임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의료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의원을 접고 2009년 의료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영국 옥스퍼드로 떠났다.
“그 교수님이 실제로 한의학과 관련된 연구를 많이 했던 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개념만을 다루는 철학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기 때문에 재미있겠다는 기대감과 더 늦기 전에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지식체계와 존재론에 무게중심을 둔 의료인류학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지도 교수님은 한의학의 지식체계에 관심이 있었는데, 제가 영국에 다시 와서 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주로 부딪히는 문제가, 한의학이라는 학문 내적인 체계보다는 한의학의 한국사회에서의 역할 또는 위치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나 연구원은 2010년 박사과정에서는 사회인류학으로 연구방향을 틀면서 지도교수도 바꾸었고, 현재는 부산대 한의전 인문사회의학부에 시간강사 및 한의약 정책센터 연구원으로 한의학정책관련 현지조사를 하기 위해 1년간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사회인류학은 영국에서 발원한 인류학의 커다란 학문조류로, 인간사회를 널리 비교연구하고, 인간의 삶과 각자의 삶이 구성하는 사회와 문화를 하나의 전일체로서 연구하여 개별적 특수성에서 궁극적인 보편성을 이끌어 내려하는 학문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서부터, 외신 기자, 국제적인 NGO활동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그들로부터 한의사라는 직업이 독특하다는 질문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그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물어볼 때마다 설명을 해줘야 하는 상황 때문에 현지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질문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오히려 제 연구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현지에서 한의사로서의 ‘나’를 설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한국 한의사와 같은 직종이 없고, 한국은 이원화제도여서 한국에는 두 종류의 메디컬 닥터가 있다 라는 사실을 현지의 학생과 교수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류학자들은 대부분이 자신이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는 극단적 경험론자들이어서 이해시키기가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주제를 잡은 후에는 법조문을 비롯해 관련 증거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논리를 만들고, 공개적인 토론의 장에서 교수님과 동료들에게 제 논지를 이해시키려 했고, 결국은 석사학위논문까지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들도 한국 한의학에 대해 흥미로워 했습니다. ‘나’를 주제로 한의사라는 정체성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와 같은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인류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특징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류학에서는 ‘나’ 곧, ‘자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고 내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한 매우 인간적인 학문입니다.”

그는 그런 과정을 겪으며 그동안 한국 한의학의 위치를 외부에 일상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준 연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의학에 대해 의학사나 중국학 쪽에서 산발적으로 다뤄지기는 하지만 총체적으로 한국 한의학의 위치를 설명해주는 연구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연구논문들이 외국의 틀을 그대로 갖다 썼기 때문에 굉장히 피상적이었습니다. 한국 한의사들은 돈을 많이 벌고, 학력고사 성적이 높다거나 사상체질 등 특이한 진료를 한다는 식입니다.”

그는 지금 ‘한국한의학에 대한 인류학적 조망’을 주제로 한국한의학의 발전과정을 비롯해 이론체계 및 치료법, 한국한의학의 근대적 전문화과정의 독특성 등에 대한 비교문화적 고찰 등을 책으로 엮어 2014년도에 발간할 예정이다.
소위 한국 한의학의 전체와 부분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망원경과 현미경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학의 장점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한국 한의학은 아직 그 부분에 대한 연구들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고,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이 이원화체계이기 때문에 저는 제도 쪽으로 하는 게 접점이겠구나 싶어서 정책과 제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한의학이 지금과 같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은 법제도적인 영향이 아주 크다는 설명이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 한의학이 한국사회에서 타 사회와 다르게 존재하는 방식을 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곧, 한의학의 또는 한의사의 정체성에 대해 드러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한의사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한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영향도 많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의사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에는 한국 한의사의 위치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다른 사회에 비슷한 의사직종, 곧 거울이라고 할 만한 의료인 직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는 “제대로 된 인류학 연구를 위해서는 한의학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은 상한론이나 사상의학 등 원전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류학의 연구방법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자료를 수집하고 기존의 이론이나 가설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현지조사를 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도 현재 한의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천연물신약 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한의계 안팎의 목소리를 다각도로 담아내기 위해 집회 현장을 다니고 토론에 참여하면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인류학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류학을 전공한 것을 너무 잘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론을 중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증거에 기반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일반 사회학과 달리 고정된 연구방법론이 없다는 면에서도 매우 매력적입니다.”
나 연구원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학문을 하려고 하면 동료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연구자가 없어서 이야기하고 토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든 점이죠.”

한편, 영국에서의 공부도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1주일에 한 번씩 소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등 빡빡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훌륭한 학자들이 많다보니, 전 세계적으로 학생들이 몰려듭니다. 지도교수 입장에서는 우선 연구주제가 흥미롭지 않으면, 받아주지를 않아요.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이 하버드, 예일, MIT 출신들이고 상대경쟁이기 때문에 경쟁을 뚫고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석사에서 박사로 올라갈 때 같이 시작했던 15명 중에서 저 혼자만 올라갔습니다. 고생도 했는데, 운도 많이 따랐다고 봐야죠.(웃음)”

그동안 학술과 임상을 오가며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했던 그는 인류학을 만나 다시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심화시켜나가는 전환점을 맞았다. 그의 연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한국 한의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연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한의사의 정체성을 돌아볼 수 있는 연구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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