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18] 笑泉 김완희 제3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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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18] 笑泉 김완희 제3의학회장
  • 승인 2003.06.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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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적 입장에서 서양의학 援用해야”


“욕심이 가리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것이 아니고,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면 한의계의 미래도 보입니다.”

올해로 12년째 제3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완희(71)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명예교수를 그의 장남인 홍균(48)씨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 성동구 소재의 한의원에서 만났다.

그는 말주변이 없어 매스컴에 나서는 것이 영 어색하다며 “차라리 강의를 하라고 하면 더 쉬울 것 같다”고 하면서도 막상 인터뷰에 들어가자 특유의 자상하고 논리적인 말솜씨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김 교수는 그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학회의 스승인 현곡 윤길영 선생의 뜻이기도 한 “‘한의학의 세계화’ ‘한의학의 현대화’ ‘한의학의 일반화’란 세 원칙 하에서 강의는 물론 학회를 이끌고 있다”면서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이 우리민족의 의학’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역사학적인 논문이 많이 나와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임상의 초석이 되는 기초이론을 등한시해서는 임상을 할 수 없고, 치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한의학의 기초는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기초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임상에서 활용하고, 그것을 다시 검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주변사람들에게 한의사로서 인정받던 외조부를 보면서 그의 인격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다가 1959년 경희대의 전신인 동양의약대를 졸업하고 서울 왕십리에서 한의사로서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렇게 서울과 경북 상주, 문산 등지에서 약 3년 간 개원의로 활동을 하다가 62년 대학 은사이기도 한 현곡 윤길영 선생의 권유로 처음 대학강단에 서게 되었다. 이후 경희대 한의대 부교수, 학과장, 학장, 한방성인병학회장 등을 두루거쳐 지금은 명예교수로, 또 제3의학회 회장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렇듯 평생을 한의학과 함께 해온 만큼 나름대로 한의계에 할말도 많다.

“한의학은 실험의학적인 면에서 모자람이 있고, 서양의학은 완전하지 않다. 한의학은 이론체계적인 면에서는 완벽한데, 그것을 현대인에게 설명하기에는 껄끄러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론을 한의학이 서양의학에서 찾아놓은 사항들의 재해석을 통해 ‘援用’한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의학이 될 것이다”

그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해 봤을 때 한의학은 이론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성을 띄고 있으며, 서양의학은 국소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한의학의 줄거리 위에 일반 국소사항의 서양의학적 지식을 활용하는 쪽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좋은 한의학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것이 바로 현곡 선생의 뜻이라면서 주체는 항상 한의학에 두고 있되 한의학의 이론을 보다 능숙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양의학을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머릿속이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의구심으로 가득찼던 김 교수는 대학2학년 때부터 현곡 선생이 지도교수로 있던 ‘새로운 한의학을 건설하자’는 모임을 통해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으며, 이때가 그의 인생에서 현곡 선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때이기도 하다.

현재 그가 회장으로 있는 제3의학회도 현곡 선생이 작고한 뒤 그를 추모하며 학문적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늘 1이라는 숫자와 처음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초등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모두 1회 졸업생이었으며, 대학시절 ‘동의(동양의약대 학생잡지)’ ‘동양의약대학보(학보)’를 최초로 발행하기도 한 장본인이다. 이와 함께 석박사과정이 생기자마자 처음으로 학위를 받게 되었고, 한의학회장 그리고 지금의 한의과대 명예교수도 그를 시점으로 처음 생겨났다.

또 지난 72년 발표한 ‘심장과 소장의 상관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유기능론’을 처음 주창했으며, 2년 뒤 미국의 전문잡지인 사이언스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유구조론’이 실리기도 해 이때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아무래도 일을 많이 하라는 팔자인 것 같다”고 웃으며 무슨 일이든 뒤를 쫓기보다는 남들보다 앞서 달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고 했다. ‘처음’과 인연이 깊은 만큼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요즘 한의학의 학위논문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사실 의미있는 논문은 몇 안된다”며 “대학에서도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까 ‘기초학’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 했다. 운영자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야 가지만 임상에서 기초를 거두어줘야 같이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면서 아무쪼록 한의계에 종사하는 후배들이 기초의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투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양방의 침술침탈 행위와 한약제제 문제 등 한의계의 현안문제와 관련해서 “늘 현안문제들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전문한약사’도 10년전에도 논의되던 부분이었다”면서 “우리의 한의학을 소중히 알면 남들이 그걸 가져간다 해서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것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반박하거나 반대를 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논리를 정확히 세운 뒤에 반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44년 간 한의계에 몸담았던 세월을 놓고 김 교수는 “뒤돌아보면 한 일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그곳에는 내가 없는 느낌”이라며 “내 계획이야 이미 나와 있는 것이고, 다만 이제는 그것을 뒷받침해서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제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소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가정이나 대학, 그밖에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 자신이 가급적 많이 행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한다면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학회와 대학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후학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그의 모습에서 평생동안 한의학에 품어 온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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