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63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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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제63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관 (3)
  • 승인 2012.09.0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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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범

이해범

mjmedi@http://


일본 참가자들의 한의학에 대한 관심과 고민 피부로 느껴

 

강연장을 꽉 메운 참가자들.

일한학술교류 심포지엄
둘째 날 아침에는 일한학술교류 심포지엄에 참가하였습니다. 이날 김갑성 대한한의학회장님과 김정곤 대한한의사협회장님도 참석했습니다. 또 김종원 동의대 사상의학과 교수님과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시고 현재 요코하마 약대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김성준 교수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김성준 교수님은 이 심포지엄의 좌장을 맡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심포지엄은 두개의 강연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모두 한국 쪽 강연자들의 발표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학회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일본 참가자들이므로 한국 쪽의 치료현황을 소개하는데 무게가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10여 명 정도 참여한 것 같았고, 그 외는 모두 일본인으로 보였습니다.

첫 번째 강연으로 ‘동서협진치료 시스템’에 대해서 경희대 재활의학과 정원석 교수님께서 발표하셨습니다. 경희대에서 협진센터를 운영하게 된 경험을 잘 말씀해주셨고, 더불어 전체론적 관점과 경근이론에 대해서 소개해주셨습니다.
질문시간에 일본 측 참가자는 “한의학적 치료는 보험이 되느냐”는 질문을 했고, 보험이 되는 한방엑스제의 숫자가 적은 것에 놀라워했습니다. 일본 측 참가자 한 분은 한국에서 의사들의 한의사에 대한 경계심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의대교육 내에 한방의학이 교육되기 전에는 그러했다”며, 교육의 문제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더불어서 일본의 참가자들은 경근이론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대전대 동서암센터장 조종관 교수님께서 ‘암 치료의 동양의학의 활용’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 암세포를 찾아서 파괴하는 관점 대신 암세포를 인체에 해를 주지 않도록 불활성화시키는 관점으로의 치료에 대해 발표를 하셨습니다.
질문시간에 일본 참가자들은 이 치료방향에 대한 자세한 결과를 궁금해 했습니다. 두 강연 모두 다른 심포지엄보다 질문과 토론이 많았으며, 질문으로 봐선 일본의 참가자들이 한의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이번 학회에는 따로 점심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런천세미나라는 것이 있어서, 세미나 장소에서 제공되는 도시락을 먹으며 세미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런천세미나는 같은 시간대에 2∼3개 정도가 열리며 모두 기업의 후원 아래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종합문의처 근처의 후원기업부스에서 런천세미나 티켓을 받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늦으면 티켓배부가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첫 세미나가 시작되기 20분 전에 부스에 도착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티켓을 받아가고 있었습니다. 글로만 읽었던 부지런한 일본인과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한방의학계의 전설, 테라사와 교수
오후에는 도서코너를 둘러보았는데, 한 구석에 마른 체구의 할아버지가 앉아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가끔씩 지나가는 분과 악수하고, 또 가끔씩 어떤 책에 사인도 해주시기에 좀 유명한 할아버지인가보다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나중에 그 할아버지가 바로 테라사와 카츠토시(寺澤捷年) 교수님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의과대학 부속병원 내에 화한진료실을 개설하고, 또 처음으로 의학부 내에 화한진료학교실 강좌를 개설하신 분이셨습니다.

더불어 「EBM한방」이라는 책을 공동저작해서 한방의학의 위상을 격상시켰으며, 토야마 의대 부속병원장을 지내셨고, 前 일본동양의학회 회장을 지내시는 등 일본한방의학계에 전설적인 분이었습니다. 평소에 「EBM한방」 1판의 한국어 번역본을 읽으며 감명을 받았던 터라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워크숍이 끝난 뒤 바로 도서코너의 그 자리로 가서 잠시 기다리니 테라사와 교수님이 오셨습니다. 이곳의 사인회는 한국과는 조금 달랐는데 제 차례가 오자 저자 옆에 계신 분이 책을 살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겠다고 하자 그 분이 새 책을 테라사와 교수님께 드렸고, 교수님께선 그 자리에서 제일 첫 페이지를 펼치시더니 붓펜으로 천천히 정자체로 본인의 이름 네 자를 사인해주셨습니다. 사인된 페이지가 열려진 채로 교수님으로부터 책을 건네받았고 그것을 다시 옆에 계신 분께서 가져가셨습니다. 사인된 페이지가 망가지지 않도록 손바람으로 조금 말린 다음 아주 얇은 티슈 두 장을 사인한 곳 위에 겹쳐놓으시고는 책을 닫아서 다시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책값을 계산할 수 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뭔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친 것 같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그림으로 보는 화한진료학」이었고, 1996년 1쇄를 찍은 이후 2011년까지 1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였습니다. 이 책은 그분께서 쓰신 「EBM한방」의 현대적인 내용과는 달리 전통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화한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는데, 그림도 많고 병에 맞는 증례도 함께 있어서 의료인의 화한의학공부를 위한 기초서적으로 좋은 책인 것 같았습니다.

어혈의 병태, 진단, 치료에 관한 워크숍
오후에는 어혈의 병태, 진단, 치료에 관한 워크숍에 참가했습니다. 두 번째로 큰 회의장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자리가 꽉 차고도 사람들이 곳곳에 서서 강연을 들을 만큼 많은 분들이 참가했습니다. 먼저 한방의학의 어혈에 대한 정의, 병태생리, 침 치료법, 고전의 관점과 치료원칙에 대한 강연이 있었습니다. 발표가 어혈에 관한 주제여서 한방병리학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강연으로 다마시마 사다히로(玉嶋貞宏)씨께서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어혈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어혈의 개념 중에 일부는 미소순환장애 범주의 병증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생활습관병의 많은 부분이 미소순환장애와 관련이 있고 어혈의 현대적 인식이 이와 관련이 있으므로 앞으로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보고였습니다.

여섯 번째 강연에서는 나카하라 야수오(仲原靖夫)씨께서 어혈지제의 효과와 전신성강피증(SSC)의 치료예를 발표했습니다. 강연자는 fibrosis를 어혈, 특히 혈열로 보고 SSC환자를 진단하였으며, 기허 기역 폐한 어혈 등이 합병되어 있는 상황에서 보중익기탕 합방제와 기타 엑스제를 병용하여 치료하였습니다. 반년 뒤 피부의 경화가 사라지고 허벅지의 궤양이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년 후인 최근에는 하지 관절의 굴곡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일곱 번째 강연으로 야마가타 유우지(山方勇次)씨께서는 만성난치성질환에 어혈이 복잡하게 물려있다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장관의 베체트씨병, 쇼그렌증후군의 증례발표에 이어서 켈로이드의 크기를 감소시킨 증례를 발표했으며, 치료가 힘든 병의 경우 어혈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치료에 성공한 증례들을 조금 더 언급했습니다. 강한 어조와 자신감에 찬 표현으로 발표를 했고 현장에서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저는 워크숍 5번째 강연을 마친 후 질의응답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 앞에 서서 질문과 답을 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어혈의 발표였지만, 중간에 ‘氣’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중 몇 가지만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전기는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실제로 이용한다. 기도 그러한 것이다.”
“신경계와 기능적인 부분으로 기를 이해하면 된다.”
“병인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개념의 기도 있다.”
“정의의 문제다. 이것도 기라고 할 수 있고 저것도 기라고 할 수 있다.”
“의미가 없는 학문은 없다. 자기 자리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치료도 열심히 하자.”
많은 분들이 주고받는 기에 대한 상당히 넓은 범위의 논의를 듣다 보니 그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하고 있는지 조금 알 수 있게 된 것 같았습니다. <계속>

※ 첨언 : 우리나라에서는 한약, 한의학으로 불리는 용어가 일본에서는 한방약, 한방의학으로 불리기 때문에 일본의 상황을 그대로 옮기고자 부득이하게 한방약, 한방의학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해 범 / 동국대 한의대 본과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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