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상한론과 권력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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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위키칼럼&메타블로그-상한론과 권력다툼
  • 승인 2012.08.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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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현

오종현

blue3043@hanmail.net


요즘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작년에 석사과정에 합격해서 이제 두 번째 학기를 맞이한다. 작년 2학기부터 들어갔으니까 올해가 두 번째 학기이고, 문제없이 끝까지 간다고 하면 내년 1학기가 끝나고 난 뒤에는 석사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논문 주제에 대해서도 교수님과 상의하고, 어떻게 계획을 짜고 어떻게 논문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 중이다. 진료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논문도 쓰려고 하니 몸도 마음도 복잡하다. 하루하루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매일 밤마다 몸살을 앓을 정도로 정신없다.

대학원 석사과정에는 두 가지 형태의 수업이 있는데, 전공 공통 수업과 전공 선택 수업이다. 대개 1학기에 전공 공통 수업으로 1과목을 선택하고 전공 선택 수업으로 2과목 정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학기에는 전공 공통 수업이 「상한론」에 대한 공부였다.

현재 학교에서 의사학과 원전을 담당하시는 은석민 교수님께서 직접 강의해주시는데, 정말 공부가 많이 된다. 공부가 된다는 것은 임상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공부라는 의미보다 뭐라 그럴까, 학문에 대한 공부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공부가 된다. 「상한론」 조문만 항상 보다가 「상한론」이 지금까지 발달해 온 배경이나 각종 연구에 대해서 살펴보게 되니 더 재미있다.

일단 「상한론」이라는 책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보면, 장중경이 썼다고 알려져 온 책으로 현재에도 많이 쓰이는 각종 처방 및 병의 전변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황제내경」과 더불어 한의학의 필수 원전 중에 하나이고, 일본 중국 한국 모두 「상한론」을 가지고 임상 또는 학문 연구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문제가 있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짧게 요약하면 원본이 없다. 고전들이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상한론」이라는 책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 뒤에 여러 사람이 썼던 책에서 부분적으로 남겨진 판본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중간중간마다 내용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들이 여러 곳 있다.

이렇다보니 많은 논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최초로 알려졌던 판본은 썼던 사람이 순서를 착각해서 잘못 넣었고 빼먹은 게 있다(옛날 책은 대나무로 엮여져 있어서 그게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 뒤에 송나라에서 교정의서국을 통해 여러 가지 책을 편찬했는데,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였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가장 먼저 나온 판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상한론」 연구의 지존은 일본이라는 자존심이 있다. 그래서 「상한론」 연구는 일본에서 굉장히 활발하다. 중국과 한국이 각자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이라는 주요 텍스트 연구에 매진하는 것에 비해 「상한론」 최초의 판본이 일본에서 발견되었다는 것과 고방을 쓴다는 특수한 환경 탓에 일본에서는 거의 「상한론」에만 매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사상체질이나 「동의보감」을 연구한다는 학자들 인터뷰도 꽤 봤지만, 일본에서는 유독 「상한론」에만 매진한다. 물론 일본식 「상한론」은 임상에서 굉장히 사용하기 편리하다. 한국의 많은 한의사들이 일본식 「상한론」 공부를 하고 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에 대학원 시간에 공부하고 있는 텍스트 중에 하나가 ‘일본에서 「상한론」을 연구하는 의사들(일본은 의사들이 한약 처방을 사용한다)이 과연 송나라 이전에 원래 「상한론」은 어떤 모습이냐’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물이다.
한 달에 두 번씩 모여서 연구를 한 끝에 결과를 도출한 논문인데, 정말 연구량이나 결과들은 대단하다. 이렇게 공부하고 진료를 어떻게 같이 병행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대단하다. 이 사람들이 하는 주요한 이야기인 즉슨, “「태평성혜방」이라는 책에 들어있던 것이 가장 빠른 원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가장 처음 나온 내용이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상한론」에 중요한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텍스트에서 보면, 송나라 교정의서국에서는 각 의서들을 모아서 편찬하였는데,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논문의 일본 의사들은 교정의서국이 편찬한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였다. 이 부분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동양에서는 의서이든 뭐든 간에 자기주장을 피력하는 경우가 드물다. 피력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유명한 사람들의 주장이나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그것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중요한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그래서 교수님께 질문 드렸다.
“그렇게 마음대로 바꿔도 되나요? 원래 이런 방식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나온 논문을 봤는데, 교정의서국이 혈연으로 뭉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그리고 거기에 관료들이 섞이면서 권력투쟁이 일어났고, 그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사람의 성향대로 책들이 편집되면서 현재의 「상한론」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니냐하는 논문을 매우 흥미롭게 보셨다”고 하셨다.
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였기 때문에 서로 견제하지 못하고 책을 마음대로 편집하게 되면서 결국 원문 자체를 잃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계속 연구 중이고 현재 논문들이 이러한 권력 투쟁이나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는 방향으로 많이 흘러간다”고 설명해주셨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의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여다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래서 역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모양이다. 앞으로 「상한론」 연구에 대해서 이런 방향으로도 진행되는 연구가 꾸준히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위의 글은 2011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오 종 현 
peterpan군 하늘을 달리다
임상 4년차 로컬한의사
http://blue304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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