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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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 승인 2012.08.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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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mjmedi@http://


한의학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부족해 아쉬워

고미숙 지음 
그린비 刊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 저자가 섬세한 통찰을 발휘하며 임상한의학을 싸고도는 외연을 탐사했다. 고맙게도 이 책은 인문학에 범람하는 은유의 물결에서 벗어나 동의보감의 기술을 은유가 아닌 직설화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인문학도인 저자에게 한의학을 논할 자격을 내심 허락하면서 못미더운 마음을 덜 수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저자의 한의학 지식은 짧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한의계에서 나온 논문은 뒤져본 기색이 없고 인문학 쪽에서 나온 한의학 관련 책이나 강의를 주로 참고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상한론을 경박하게 해석하는가 하면 「의림촬요」를 의사들의 전기쯤으로 알고, 의학적 맥락에 대한 이해력 부족으로 임상과 관련하여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을 펴는 곳도 여러 군데 보인다.
한의학 전공자가 책을 썼다면 물론 이런 사소한 오류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처럼 동의보감을 활짝 펼쳐 시원한 풍경을 통쾌하고도 단출하게 담을 수 있는 능력이 한의학 전공자 중에 몇이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치마폭에 동의보감을 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의학 전반을 융회관통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醫出於儒”라고 했다. 이는 易이 보여주는 변화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글쟁이가 가지는 융회관통의 힘을 말하는 듯도 하다.

물론 고미숙이 함께 하는 동의보감/의역학 공부모임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들의 시도는 마치 민간 향약의학이나 구급의학, 혹은 양반지식인 의학의 부활처럼 보인다. 다만 조선시대와 달리 지금의 이러한 시도들은 상업화, 서비스업화 되어가는 의료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잠시 우리를 돌아보자면, 융회관통과는 일면식도 없이 6년 내리 분과의 쪼가리 속에서 헤매다가 졸업이라고 토하듯 내던져져서는 환자 사로잡는 강의 쫓아다니기 부지기수다. 정작 학교 교과 이외에 한의학 서적을 얼마나 깊이 있게 공부해왔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이가 드물다. 「의학입문」에, “의서를 읽고도 의를 모를 수는 있으나 의서를 안 읽고 의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학교에서 의서를 읽었다고 생각하는가? 혹 쪼가리 지식들은 아니었는가?

고미숙의 종횡무진을 보면서, 학문을 업으로 삼는 우리가 의서를 깊이 체득하기 어려운 것은 옛 학자들이 심어놓은 언표들을 이해할 만한 인문학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사뭇 들었다.
만일 한의대 지원 자격을 이과가 아닌 문과로 바꾼다면 한의학의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정책입안자들의 이상향인 과학화, 객관화, 표준화의 덫에서 비로소 한의학을 빼낼 방도가 열릴 성도 싶다. (값 1만 7천900원)

홍세영 / 경희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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