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 붓다의 치명적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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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붓다의 치명적 농담
  • 승인 2012.08.0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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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불교 개론서이지만 한의사들에게도 암시하는 바가 큰 책

한형조 지음
문학동네 刊
대지의 타는 목마름을 일거에 해소시켰던 장마가 채 지루해지기도 전에 무더위가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사람의 체온을 넘나드는 폭염에 딴 생각 못하고 오직 피서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럴 땐 어디로 떠나야 좋을까요? 나름 염두에 두는 곳이 각각 다르겠지만, 저는 심산유곡의 고즈넉한 절이 최적의 장소라 여겨집니다. 새벽엔 한기마저 느껴지는 산사에서 스님들의 독경소리 들으며 고요히 침잠하는 것! 상상만으로도 지친 몸과 마음이 생기를 되찾는 기분이 팍팍 들지 않습니까?

절에서 스님들이 읽거나 외는 불경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반야심경’과 더불어 ‘금강경’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으로 꼽히는 이 ‘금강경’에 혹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 해도 여간해선 쉽지 않습니다.
온통 한자로 이루어진데다가(비교적 한자에 친숙한 한의사들에게도 힘들진대 일반인들은 오죽하겠어요), 우리말 해석본이라 해도 경전의 심오한 이치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서적은 많지 않거든요(제 경우에는 그나마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가 제일 낫다고 판단해 몇 년 전에 소개드렸습니다).
기록은 항상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죠? 최근 접한 한형조 교수님의 책 두 권 - 「허접한 꽃들의 축제」 및 「붓다의 치명적 농담」 - 은 금강경 관련 서적으로는 단연 최고였습니다.
물론 저는 육조 혜능(六祖 慧能)의 해설, 서구의 불교학자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의 영역, 야부 도천(冶父 道川)의 송(頌) 등을 곁들이며 금강경 원문에 축자(逐字)적인 주석을 붙인 ‘소(疎)’ 형식의 「허접한 꽃들의 축제」보다는, 오해와 헛디딤의 위험은 크지만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설명했다는 ‘별기(別記)’ 형식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 더욱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늘 나무보다는 숲이 먼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불교 해설서에서는 절대 마주치기 어려운, 톡톡 튀는 발랄한 문장을 읽는 맛이란…….

「붓다의 치명적 농담」은 불교 개론서임에 분명하지만, 한의사들에게도 암시하는 바가 큰 책입니다. 가령 한 교수님은 도입부에서 일반인들이 불교를 어려워하는 이유 다섯 가지 - 시각·다양성·언어·경험·표현 - 를 들었습니다.
즉, 불교의 발상과 시각이 상식과는 판이하고, 불교에서 언급되는 진리가 반야(般若)·유식(唯識)·화엄(華嚴)·천태(天台)·정토(淨土)·선(禪) 등 다양하며, 한자투성이인 불경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고, 불교의 가르침이 믿음을 넘어 삶에서의 경험으로 확인되어야 하며, 구경(究竟)이 아닌 방편(方便)에 그치는 모호한 불교식 표현 때문이라 했는데, 이는 한의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식은 경험으로 확인되어야 생명력을 얻는다. 보지도 않고 믿는 것은 앵무새거나 마군이다. 경험을 떠난 소외된 지식은 도그마가 되고 권력이 되어 나와 남을 망친다.”란 구절이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우리 한의계에서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현재 우리가 쓰는 일상적 언어의 지평 위에서 언설을 가한 책이 빨리 나왔으면 좋으련만……. (값 1만 9천 8백 원)

안세영 /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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