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눈의 역사 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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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눈의 역사 눈의 미학
  • 승인 2012.06.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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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

김진돈

mjmedi@http://


시각문화에 관한 진지하고 폭넓은 논의

 

임철규 지음,
한길사 刊
단순한 눈을 통한 그림의 이야기가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사를 사람의 눈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이를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문학, 미술, 신학, 철학, 신화, 역사 등의 다양한 분야를 폭넓고 심도 있게 잘 표현한 책이다. 

사실 90년대 한국 인문학계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시각문화에 대한 논의들이 전개되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던 ‘눈’에 대해 서양의 문화와 역사 전반을 넓은 시각으로 통찰하면서 진지하게 성찰한 결과를 모두 담았다.

서양문명에서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뿌리 깊은 상관관계의 규명은 이미 여러 학자에 의해 널리 알려진 논제다. 일반적으로 눈은 그 ‘본 바’를 ‘타자화’하며 이 ‘타자화’는 ‘차별화’를 전제로 한다. 이 차별화는 전체에서 부분을 떼어내어 그것이 마치 전체인 양 틀 짓는 눈이 초래한 단편적인 인식의 작란이 자리잡고 있다. 

시각을 힘과 동일시한 로마의 학자이자 시인인 바로는 ‘시각’(visus)을 의미하는 단어와 ‘힘’(vis)을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이 모두 ‘나는 본다’(video)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이 ‘힘’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성폭력이나 강간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꾼 악타이온이 목욕하는 여신 아르테미스를 “눈으로 범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처럼 눈은 자기 안에 타자를 가두는 감옥이다. 이러한 눈은 악한 눈이라 할 수 있다. 서양의 역사는 이러한 악한 눈이 지배한 역사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미래는 없고 악한 눈은 선한 눈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에게 ‘구원의 눈’은 없는 것인가. 이 절박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이며 목적이다.  

‘눈과 태양, 신 그리고 빛’의 장에는 최고 권력의 상징인 태양과 눈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고대세계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를 통해 보여준다. 눈이 얼마나 파괴적인 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메두사다. 악한 눈의 상징인 메두사는 사실은 풍요와 재생을 상징했지만 남성들이 메두사의 눈에 담긴 창조의 속성을 박탈하고 파괴적인 속성만을 결부시켰다고. 결국 악한 눈과 여성 메두사를 동일시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는 남성들이 조작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상논쟁’ 편에서는 시각과 신학적인 문제를 시대에 따라 고찰하며 성스러움과 거룩함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성상숭배의 문제였다. 성상파괴운동의 종말과 성상숭배의 부활을 가능하게 했던 예수의 육화, 그것의 본질은 무엇이며, 당시 비잔틴 제국의 옹호론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고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예수의 성상(聖像)은 눈이 확인한 육화의 실체를 다시 확인해주는 눈의 매체나 다를 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낭만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편에선 서구 문학과 예술의 기본원리를 눈과의 관계를 통해 규명해 볼 때, 낭만주의가 눈에 대한 부정이라면 리얼리즘은 눈에 대한 긍정, 모더니즘이 눈에 대한 회의(懷疑)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눈에 대한 절망이라고 하고, ‘낭만주의’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백미라 할 미술사적인 논의를 중심으로 눈의 문화를 ‘영혼의 풍경화’ 편에서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선사시대와 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과 반동의 시대, 이성과 혁명의 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통해 외적인 현실에서 내면으로 시각적 혁명의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15세기 이전은 중세시대, 16~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 또는 이성의 시대, 20세기는 모더니즘의 시대, 21세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19세기만은 그것을 하나의 시대로 규정할 이름을 가지지 않는다. 니체적인 신의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신의 부재를 경험했던, 말하자면 전통적인 신의 위광(威光)이 사라져갔던, 세속화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머리에서 이 책의 주요한 전언인 “눈이 있는 한 인간세계는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종교용어를 구사한다면 인간에게 구원은 없다”는 주장은 과거의 어느 선학들이나 동시대의 그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다. 문학, 역사, 신학, 철학, 신화, 역사 등의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심도 있게 펼쳐지는 세계에 잠시 빠져보면 눈에 대한 인식의 폭이 훨씬 더 확장되지 않을까. (값 2만 5천 원)

김진돈 / 송파구 운제당한의원장, 송파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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