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한약재 자가규격제 폐지, 올바른 정착을 위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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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한약재 자가규격제 폐지, 올바른 정착을 위한 제안
  • 승인 2012.05.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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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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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욱 승
경기 용정경희한의원 원장
2012년 4월 1일부터 한약재 자가규격제 폐지가 본격화됐다. 엄밀히 말하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해오던 조치인데 그간 유예기간을 가진 것이고, 2012년도 4월부터 한방병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쓰는 한약재는 모두 품질검사를 한 규격품으로 제한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약간 생소한 제도이고 그동안 한약재가 모두 문제가 있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간단하게 부연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이전부터 쓰인 한약재 중 정식 수입품은 대부분 규격품이다. 일정 정도의 품질검사를 거쳐야 국내 수입이 가능한 것이다. 안전기준이 일반 식품보다 더 엄격하다. 그럼 이번에 말하는 자가규격제란 무엇을 말하는가?

국내 한약재배 농가 및 유통 상인들은 대부분 영세하다. 안전기준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에서 이런 검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데, 여태까지는 국내 한약재 농가 및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검사를 생략하고 단순가공·포장·판매제(자가규격제)를 허용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인삼조차 의약품 품질검사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유통되는 경우가 많으니 다른 일반 한약재는 말할 게 없다. 이번 조치로 한약재 가격이 더 상승될 가능성이 높지만, 국민건강과 밀접한 사안이라 긍정적 측면이 더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실제 한약재를 활용하는 한의사 입장에서도 한약재 규격품 사용은 환영할만하다. 그동안 여러 가지 악의적인 보도를 통해 한약재가 오염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최소한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한약재는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아직까지는 시행 초기이고 국민들 대부분이 잘 모르는 상황이라 대한한의사협회뿐 아니라 식약청이나 보건복지부 역시 제도 홍보에 힘을 좀 더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반면, 모든 제도가 그렇듯 한약재 자가규격제 폐지 역시 일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대량으로 유통되는 한약재가 아닌 소량으로 유통되는 한약재의 경우이다. 특정질환이나 특정 체질에만 쓰이는 한약재의 경우 매우 소량으로 생산·유통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의사들이 활용하는 한약재 중에서도 1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지금 제도 시행 후 약재를 공식적으로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설사 구했다고 해도 식품으로 취급해서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 한의사조차 범법자처럼 여겨지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품질검사에 대한 비용을 할인해주거나 처리를 대행해주지 않는 이상 일반 제약회사나 기타 민간에서 해결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 복지부나 식약청은 조속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한약재의 고질적인 문제인 식약공용한약재에 대한 관리기준 강화이다. 같은 물품인데, 한약재와 식품으로 사용가능하다는 이유로 기준이 달라지면 자연스럽게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앞으로 한약재 규격품 사용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까지 한약재 중 규격품과 식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은 상황에서 식품으로 사용되는 저질 한약재 때문에 전체 한약재 이미지가 실추된다면 규격품제도 역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건강식품이란 이름으로 남용될 소지가 많은 한약재 관련 상품을 그대로 놔두고 한약재 규격품만 관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식약공용한약재를 줄여가는 것이 필요하며, 단기적으로는 식품으로 사용 시에도 기준을 만들어 복용량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과대광고 및 허위광고도 모두 엄격하게 규제해야 할 것이다.

수입 한약재, 국산 한약재 모두 일단 규격품 품질검사를 받는 시기가 드디어 도래했다. 한약재 규격품 제도 안착으로 수천 년 이어진 한의학이 다시 한 번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되길 기대한다.


장 욱 승
경기 용정경희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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