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공부하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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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공부하다 죽어라」
  • 승인 2012.04.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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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http://


눈 푸른 외국인 수행승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현각, 무량 외 지음,
청아, 류시화 옮김, 조화로운삶 刊
4.11 총선이 결국 야권의 패배로 끝났습니다. ‘아나키스트(anarchist)’를 자임하며 그간 정치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MB 정부 이후 사회 각 부문에서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에 내심 통렬한 심판이 이루어지길 바랐거든요.

근래 ‘정의란 무엇인가’, ‘닥치고 정치’ 등이 온오프 서점에서 한 해 최고의 책으로 뽑히고,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이 무능 부패·무한 비리·멍청이 바보라는 조롱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현 집권 세력이 국회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한 선거 결과에 한동안 망연자실했습니다.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을 직시하며 “그래, 마음을 비우자”는 체념으로 집어든 책이 「공부하다 죽어라」였는데, 석가탄신일도 다가오니만큼 소개드리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공부하다 죽어라」는 2001년 혜암 스님께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열반송으로 제자들에게 설파한 화두라네요)의 이 책은 벽안(碧眼)의 외국인 수행승들의 강연록 모음입니다.

대전의 자광사(慈光寺)란 절에서 2003년 초겨울부터 매달 한 번씩 약 1년여 동안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출가 수행자 초청 영어 법회’의 내용을, 자광사의 주지 청아 스님과 시인 류시화 님이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요. 1년에서 1달 모자라는 기간 동안 매번 다른 비구 혹 비구니께서 강연했던 까닭에 책은 모두 11꼭지로 구성되는데, 국적은 물론 살아온 내력이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수계승(受戒僧)이라는 공통점 덕택인지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저는 예전에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감명 깊게 읽었던 탓인지, 첫 번째 소개된 현각(玄覺) 스님의 강연내용이 더욱 가슴에 와 닿더군요.)

책을 읽으며 제가 밑줄 친 부분은 이런 것들입니다.
“선종(참선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깨달으려는 종파)에서나, 교종(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는 종파)에서나, 또 대승(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는 한국·중국·일본의 불교)에서나, 소승(개인의 깨달음을 중요시하는 미얀마·태국·스리랑카의 남방 불교)에서나 핵심은 무상(無常)에 대한 자각이다”
“참된 베풂에는 주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베푸는 물건마저도 없는 것이다”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어느 날엔가는 우주로 돌아가게 될 이 렌터카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생을 소비하고 있다”
“이 집을 짓는데 많은 노동이…, 한 그릇의 밥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동이…, 나는 이토록 타인에 의존하고 있구나.” 등등.

종교의 본질인 자비심의 실천을 위해 대승불교에서는 항상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먼저 그대의 참 성품을 얻고, 그 다음에는 모든 존재를 구하라)’을 외칩니다. 그런데 이 보살(菩薩)의 도(道)는 우리 한의사들에게 적용할지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말 멋진 캐치 프레이즈(catch phrase)인 것 같습니다. “먼저 한의학의 참 이치를 얻고, 그 다음에는 모든 환자를 병고로부터 구하라!” 어떤가요? (값 1만 4천 원)

안 세 영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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