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엄마가 된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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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엄마가 된 한의사
  • 승인 2012.04.1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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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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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 교육이 가져다 준 행복

 

                    서주희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과장

IBCLC, 모유수유한의학회 운영이사

지난 해 12월.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된 것이다.
출산의 고통은 곧 지나갔지만,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모유수유의 문제였다.
나는 이미 출산 전에 집중적인 모유수유 전문가로서의 교육을 받고 국제자격증까지 취득했기 때문에 정말 잘 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교만했던가? 실전이 힘들거라고 했지만 이럴 수가…. 다들 왜 모유수유가 힘들다고 하는지, 온몸으로 실감했다.

출산 후 일주일간은 유두균열로 인해 아이가 젖을 물 때마다 지속되는 통증으로 인해 입에다 손수건을 물고 신음소리를 참아가며 수유를 해야 할 정도였다. 진통할 때는 소리 한 번 안 질렀던 내가 말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 찢어지고 타는 듯한 아픔이 함께 했지만, 그때마다 정말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면서 허벅지를 대신 꼬집어가며 통증을 참아냈다. 모성애라는 건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보다는, 이런 훈련의 결과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모든 건 다 지나가리라 하였던가? 출산 전에 받았던 모유수유전문가 교육을 통해 알고 있던 지식 덕에 감당할 수 있었다. 유두균열로 인한 통증은 대부분 자세 잘못이기 때문에 수유 자세를 바로하려고 노력했다. 수유자세를 바로 한다는 것도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두균열 문제가 해결되면서 어느덧 수유가 즐거워지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입을 오물오물 거리며 젖을 빠는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젖이 불어 아플 때는 빨리 아이가 빨아줬으면 하는 기다림이 있기도 했다. 잠들어 있어도 반사적으로 젖을 찾고 빠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인간은 구강기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사랑을 받는 존재로구나 라고 느끼며, 아직까지 구강기적 욕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주고 인정해줘야겠다는다짐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엄마라는 그 글자가 또 하나의 삶의 굴레처럼 책임감과 의무감만 더해졌다. 아이와 둘만 있으면 괜히 불안하고 아이가 자고 있지 않거나 울면 또 불안하곤 해서, 또한 어떻게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에 육아를 굉장히 힘들게 느꼈다.

그때 아이 넷을 키워 이젠 손주를 보고 계신 지인께서 즐기는 육아를 하라고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아, 난 육아를 일로 생각했지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는 전혀 생각하진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마음을 누르고 있던 짐이 깨어지는 듯한 가벼움이 몰려왔다.

그러고 나니 매 순간마다 아이를 관찰하게 되고, 울거나 짜증을 내도 아이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놀거리가 없어 가만히 아이를 안고 앉아있어도 그 순간의 지루함마저 즐길거리로 여겨지게 되었다.

모유수유 전문가 과정의 교육에서 배웠던 모유수유 지식이나, 영유아 관리, 육아에 관한 지식은 육아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런 사전 지식이 없었더라면 아마 모유수유를 금방 포기해 아이와 나누는 이 깊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란 아찔함이 든다.

모유수유란 아이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믿고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느껴지는 벅차오르는 충만감이다. 그걸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그것의 의미가 너무 큰 듯하다.

엄마가 된다는 것, 모유수유를 한다는 것. 이것은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면 친정아빠 앞에서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훌러덩 가슴을 내놓게 된다는 것이지만 꽤 행복한 일이다. 꽤 해볼만한 일이다. 꽤 자랑스러운 일이다.

※4월 22일(일)부터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에서 IBCLC 5차 강의가 시작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민족의학신문광고와 카페 (http://cafe.naver.com/ breastfeed) 공지를 참고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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