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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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승인 2012.04.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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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김홍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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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저자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꽤나 오래 되었지만, 그것이 현재 지배적으로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대개의 정설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외면되어 온 면이 있다. 강단에 서서 지난 20여 년간 홀로 우리 역사의 왜곡된 사항들을 지적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애써온 것은 단순히 우리 역사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틀린 것을 바로잡고 올바른 것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역사학자로서 정직한 역사관을 펼치기 위함이다. 그것이 미래의 후손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왜곡의 가장 큰 줄기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조선후기의 노론사관과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이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가 76명의 조선인들에게 작위와 훈장을 주는데, 그 중에 소속당파 활동과 관련을 알 수 있는 인물이 69명이다. 그 가운데 북인이 2명이고, 소론이 11명이며, 56명이 당시 집권당인 노론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선 인물들이 노론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그 이득으로 얻은 많은 돈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넉넉한 재산으로 유학을 많이 가게 됨으로써 그 결과 학문권력을 많이 장악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 역사학계의 거목인 이병도(李丙燾)는 당시 일본에서 요시다(吉田東伍)와 쓰다(津田左右吉)의 영향을 받았고, 이케우치(池內宏)로부터는 뒷날까지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이들의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조선인은 식민지로 출발한 민족이며, 항상 누구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대일본제국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의 촉탁(1925∼1929)을 받기도 하고, 진단학회(震檀學會)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 국사편찬위원회를 주관하기도 하여 꾸며진 우리나라 국사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국사다.

그리하여 소중화(小中華)주의의 노론이 제기한 기자조선설은 식민사관과 맞물려 한사군(漢四郡)의 위치가 한반도 안으로 들어와서, 위로는 한사군이 있고 아래로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설치되어 원래 위로나 아래로나 식민통치가 되어있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일제의 식민통치는 전연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아떨어지는 얘기가 된다. 한사군의 위치가 요동에서 한반도로 들어옴으로써 원래 한국의 북쪽은 중국 땅이라는 얘기다. 이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바로 잡지 않고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두는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동북공정에 앞장서는 꼴이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나 「고사기(古事記)」 같은 일본의 역사책에 있는 임나일본부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없다고,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모두 가짜로 모는 쓰다 소우키치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김부식(金富軾)의 초기 역사기록을 가짜로 보는 이상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과는 뻔하다.

해방 후에 좌파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월북하고, 남아있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납북되어, 나머지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이 오늘날의 우리 국사를 만들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식민사학의 영향 아래 김두종(金斗鍾)은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를 집필하여 우리 의학사의 바탕이 되고 있다.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양의학이 주류로 등장하고, 강제로 해산된 민족의학의 뿌리가 흔들린 우리는 이제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겠는가? (값 1만 5천 원)

金洪均 /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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