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밥상(12) - 현승은 원장(수원 새날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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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의 밥상(12) - 현승은 원장(수원 새날한의원)
  • 승인 2012.03.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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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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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채식보다 채소섭취량 늘려 영양밀도 높여 나가야”

“극단적 채식보다 채소섭취량 늘려 영양밀도 높여 나가야”

어렸을 때 아토피로 고생했던 수원새날의료생협 새날한의원 현승은(33) 원장은 어머니가 식단을 바꾸면서 아토피 증상이 호전된 경험이 있다. 한의사가 된 것도 평소 “네 병은 네가 낫게 하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니 음식에 관한 그의 관심은 꽤 오래전부터다.
성장기 때 자장면이나 가공식품을 먹고 싶다는 충동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결단코 안 해주셨다고 한다. 대학시절 시중에서 파는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가 탈이 난 후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었단다.

극단적 채식보다는 채소섭취량 늘려야

그가 현재 실천하고, 환자들에게 권하고 있는 섭생법은 거의 채식주의라고 해도 무방한데, 극단적인 채식을 권하기보다 육류가 자기 몸에 맞다면 먹을 수도 있는 유연한 채식을 권했다.

현 원장은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잘 차리려고 고민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간단하게 오이 2개, 토마토 1개 등으로 시작해도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으니,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 것”을 강조했다.

이날 그가 싸온 도시락 메뉴도 현미밥, 파프리카, 데친 브로콜리, 구운 버섯, 콩나물무침, 냉이두부된장국, 버섯볶음 등이다.

그가 이렇게 혼자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한 것은 점심 한 끼 정도는 잘 챙겨먹자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채소로 어떻게 밥을 먹어요? 라고 물어보면 제가 직접 보여줄 수가 있고,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환자들에게 섭생지도를 해도 실천을 잘 안 해서 기운이 빠지기도 했던 그는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라도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자며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직접 싼 지 3개월이 넘었다.

그는 소음인이지만 사상체질 분류에 따라 몸에 맞는 음식만을 골라 먹지는 않는단다. 환자를 볼 때도 사상분류를 하지만, 증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한 체질식단을 제안하지 않는다.

“체질의학을 하시는 분들은 체질에 맞게 음식을 잘 따져 먹는 것이 건강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일상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에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은 그렇게 현실적이도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양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약은 체질, 증상에 맞게 엄격하게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식품은 체질에 맞지 않더라도 그 해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 원장은 자신의 섭생법에 대해 “단순히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채식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영양소들의 양을 극대화 하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극단적인 채식보다는 채소량을 얼마나 많이 늘려갈 것인가”에 중점을 맞추길 권했다.

양념간 없는 음식 고유의 맛 즐겨
“패스트푸드점에서 채식주의 메뉴를 먹는다고 건강해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흰쌀밥이나 빵을 주식으로 하고 채소류의 섭취가 적다면 이것도 건강한 식단이라고 할 수 없어요. 조엘 펄먼 박사는 「식생활 혁명」이란 책에서 ‘영양 밀도’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칼로리당 영양소의 함량을 비교하여 높은 쪽을 많이 먹자고 제안해요. 거기에 해당하는 것이 녹색채소류 쪽인데, 녹색 채소 > 다른 색깔 있는 채소 > 과일류 > 콩류, 견과류 > 곡류 > 동물성 식품들, 가공식품류 등의 순으로 많이 먹을 수 있다면 영양의 불균형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는 평소에도 현미밥에 채식을 하는 편이다. 스스로 요리솜씨가 별로 없어 다양한 채소들을 주로 데치거나 생으로 먹는데 무엇보다 음식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보통 반찬이라고 하면 양념간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채소를 많이 못 먹게 됩니다. 그래서 샐러드도 거의 드레싱 없이 먹습니다. 처음에는 맛이 좀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몇 달간 이런 식단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간하지 않는 것이 편하고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채소 중에서도 시금치나 브로콜리, 양배추 등을 가장 많이 데쳐 먹고, 토마토나 사과, 당근도 식사 대용으로 먹는 편이다.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면서 그가 얻은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고 한다. 결혼 4년차인 현 원장은 아토피로 인해 다소 신경이 예민한 부분도 있었지만 부인으로부터 이전보다 차분해졌다는 말도 듣고, 천천히 음식을 섭취하다보니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점도 변화된 점이라고 덧붙였다.

현미식과 채식 프로그램 질환 치료에 효과
“저는 현대인들이 영양가 없는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 정제당과 흰 쌀밥, 밀가루 음식, 지방, 육류 섭취가 많아지고 천연식품이나 채소의 섭취가 줄어든 영양 불균형 문제나 과음, 과식, 씹지 않고 급하게 먹는 식습관 문제처럼 체질과 상관없이 중요한 일반적인 음식 문제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는 “특히 비염이나 아토피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있어서는 음식관련 지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설명 자료를 주면서 지도를 하지만, 아직은 진료시간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내과 질환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지침 외에 질환별로 차별적인 섭생법을 강조하고 있지는 못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래서 별도로 의료생협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음식과 관련한 교육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조합원 중에 비만 당뇨 고혈압 같은 대사성 질환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상하반기에 현미식과 채식만을 하는 프로그램을 약 6주간 교육과 진단을 병행하면서 진행하기도 했고, 단식 프로그램을 약 5주간 진행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본 결과 실제 질환이 많이 나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참 좋은 건 저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것뿐인데, 그러다 보니 건강교육프로그램이 정착이 되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채식관련 공부를 하면서 채식 식당을 직접 찾아가 먹기도 하는 소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좋은 식습관을 실천하게 하는 효과들이 있다는 것에 한의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가 일반 개원이 아닌 의료생협을 선택한 것도 그룹단위로 채식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한의원에서 일하기 몇 년 전부터 먹을거리 생협에서 요청하는 식품안전에 관한 교육, 급식운동에서 영양사나 교육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등을 여러 차례 진행해왔다. 또 먹을거리 생협 조직에서 식품 정책을 만드는 데 자문역할을 할 만큼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도 기회가 있으면 교육부문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데, 현대인들 특히 아이들에게는 식품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잘못된 먹을거리에 빠져드는 사회적 흐름을 바꿀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친환경 급식을 하는 초등학교에서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알레르기 증상에 개선을 보였다고 하는 설문결과를 보고, 그것을 열심히 추진했던 영양사 선생님이 저보다 훨씬 영향력 있고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 많은 질환이 먹을거리를 바꾸면서 개선될 여지가 많습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특별한 게 별로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그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한의사였다.

현 원장은 먼 훗날 일본의 다케구마 내과의사처럼 농사를 직접 지어서 환자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의료문제도 함께 고민하는 의료인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 지난해 주말농장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텃밭을 가꾸는 일은 서툴러서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일단 마음먹은 것을 시작하고 보는 그의 크고 작은 실천들이 좋은 결실을 맺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수원 = 김은경 기자

■ 현승은 원장의 점심밥상 엿보기

메뉴.  현미밥, 파프리카, 데친 브로콜리, 구운 버섯, 콩나물무침, 냉이두부된장국, 버섯볶음 등

Tip.   1.  채소는 생으로 먹거나 데쳐 먹는데 소금간을 약간 하거나 양념간을 하지 않아야 채소를 많이 섭취할 수 있고, 영양밀도도 높일 수 있다.

2.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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