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525) -「東武格致稿」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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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525) -「東武格致稿」②
  • 승인 2012.02.2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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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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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음미해 보는 獨行의 의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東武 李濟馬(1838~1900)가 쓴 「格致稿」에 담겨있는 글들은 문장이 난삽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아 한의학도들에게 넘어야 할 큰 산으로 여겨지곤 하였다. 한글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생경한 개념 용어들이 끊임없이 열거되고 그에 대한 해설이나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아 억지로 읽는다 해도 확연하게 깨우쳐지는 것이 없어 처음 입문하는 초학자에게는 매우 당혹감을 안겨 주는 대표적인 난독서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었다.

권1의 서제 아래에는 저자 서문 격에 해당하는 짤막한 글이 실려 있다. “격치라는 이름에다 산만한 글이라고 말을 삼은 것[格致稿]은 이 글이 ‘격물치지’ 하지 않은 것이 없되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었을 뿐 아니라 문자가 거칠고 성글거나 말의 뜻이 혹간 제멋대로이거나 소략하여 세상 한쪽 켠에 旁行할 뿐이고 제대로 유행시키기엔 모자람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권2의 반성잠에는 이 글의 집필 시점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임진년 6월 9일부터 12월 4일까지 또 이듬해인 계사년 1월 17일부터 2월 25일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改草, 즉 초고를 개정한 끝에 완성하였다고 밝혀져 있다. 따라서 이 기록에 따르면 1892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1893년 봄에 이르러 집필을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난 부분은 본문의 첫 번째 白圈點이 찍혀져 있는 한 단락이다. 여기에는 “東武의 姓은 李요, 出身하여 東國의 武弁이 되었기에 호를 東武라고 하였다”라고 하여 저자를 객관적 입장에서 기술하였다. 또 같은 편에 “동무는 올해 나이 57살이 되었지만 오히려 남을 속이려 하는 마음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두루두루 스스로 경계하고자 함이나 이 또한 어렵도다”라고 말해 자못 자탄조로 기술한 대목도 보인다.

다음 단락에서 반성잠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설명하면서 “동무가 어려서부터 나이가 들어 늙어서까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고 남을 속이려는 마음이 끊이질 않아 속이려 하면 그럴 때마다 낭패를 보고 더욱 곤궁하고 그르치게 되어 부득이 삼가는 마음으로 돌이켜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라고 해설하여 3인칭 화법으로 동무를 객체적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어 이 글이 단순히 동무의 원작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 사본의 이런 특성 때문에 책머리에 적힌 제목에 유독 東武라는 표기를 덧붙여 원작의 淵源을 표시하려 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반성잠은 八卦의 易象을 본떠 이름을 붙인 것인데, 乾-兌-坤-艮-离-震-坎-巽의 차례로 배열해 놓았다. 잠언은 길고 짧은 것이 일정하진 않으며, 괘상 별로 10여 편에서 수십 편에 이르는 것이 있어 일률적이진 않다. 팔괘잠이 끝나는 지점에 태극도가 그려져 있고 전체내용을 총괄하는 맺음말에 해당하는 글, 5조목이 실려 있다.

권3 독행편의 제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첫머리에 붙어 있다.
“좋아하되 그 그릇됨을 알거든 가운데 서서 기대지 않아야 하며, 꺼려하되 그 아름다움을 알거든 和合하되 휩쓸리지 않아야 하나니 이와 같이 하면 저절로 獨行할 수 있으니 독행이란 不動心이다.”

時流에 영합하고 권세에 의지하는 경우는 많아도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만의 길을 걷는 자는 참으로 드문 세상이다. 외세의 그림자가 조선을 드리우고 국운이 기울어 가는 세상에 홀로 의인의 길을 걸었던 동무 이제마, 그의 사상의학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가 혼자 걸어가야만 했던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이는 흔치 않다. 지금은 「격치고」 독행편에서 말한 不動心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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